가식을 예찬하는 마음
고백하건대, 나는 가식덩어리다. 인터넷을 방황하다 보면 INFJ의 특징을 정리한 글을 종종 마주하는데, 늘 겉과 속이 다른 가식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빠지질 않는다. 그래서 억울하거나 기분이 상했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공감하다 못해 명징한 통찰력에 경탄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아마 많은 이가 부정적인 의미로 적시한 사실이겠지만, 가식 전도사나 다름없는 나로서는 기분 나쁠 이유가 전혀 없다.
내가 가식의 의인화가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본래 듣기 좋은 말을 부러 입에 올리는 편이었지만, 의식적으로 화법을 교정하기 시작한 건 첫 인턴 생활을 했을 때였다. 당시 내 나이 스물다섯. 사회 초년생들이 으레 그러하듯, 나 역시 바람직한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고민했다. 위계질서에 반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일하고 싶은 싹싹한 인성을 갖춘, 이른바 전설의 포켓몬 같은 막내가 되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긍정어’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보다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는 조언을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참이었다. 그렇게 무자비한 칭찬폭격기가 탄생했다.
“이번 인스타그램 콘텐츠 디자인 예쁘네요.”
“밥 정말 맛있어요. 여기 고르신 분 센스 정말 최고세요!”
“바질빵 진짜 좋아하거든요. 덕분에 이런 간식도 먹고 행복하네요.”
영혼을 탈곡하듯 매 순간 긍정어를 쏟아내기 위해 눈물겹게 분투했다. 그런데 웬걸.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영혼이 너무 없는 거 아녜요?”
나는 꽤 능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인간을 흉내 내는 로봇처럼 어색했던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회사에서 ‘돌려 까기’를 하는 ‘모두 까기 인형’으로 불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칭찬인지 핀잔인지 혼란스러웠다. 한 선임이 이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가식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용호 씨, 오늘은 안 까요? 빨리 까주세요.”
알고 보니 내향형 인간들만 가득한 팀에서 내가 먹잇감을 자청함으로써 훈훈한 분위기 형성에 일조한 듯했다. 의도한 방향은 아니었지만 나의 가식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니, 그것 참 다행이었다. 지극한 가식 덕분만은 아니겠지만 나의 첫 인턴생활은 무탈히 마무리되었고, 나는 첫 경험을 발판 삼아 가는 곳마다 당당하게 가식을 생활화했다. 그 결과는 늘 긍정적이었다.
수년간의 가식 생활을 거치며 변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가식하는 마음가짐이다. 처음에는 의례적으로 가식했지만, 점차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가식하게 되었다. 직장인이 되어 실제로 사회에 뛰어들어 보니 세상은 퍽퍽하다 못해 삼엄했다. 칭찬은 고사하고 쓴소리나 안 들으면 본전인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칭찬이나 듣기 좋은 말만큼 누군가의 기분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고양시키는 것은 쉽게 찾기 힘들다. 이것이 가식의 핵심적인 순기능이다.
혹자는 그래봐야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가식의 정의를 살펴보자.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식을 ‘말이나 행동 따위를 거짓으로 꾸밈’이라고 정의한다. 아마도 대중이 가식을 부정적으로 보는 데엔 ‘거짓’이라는 피상과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성이 주효할 테다.
내가 해석하는 가식은 조금 다르다. 온전히 ‘거짓’은 아니라는 점이 그렇다. 회사에서 가끔 우스개로 그런 말을 한다.
"스페셜티 원두가 1%만 들어가도 스페셜티 커피잖아요."
가식에도 진심과 진실이 있다. 진심과 진실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가식이란 없으니, 단순히 거짓말로 치부하면 서운할 따름이다. 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행위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해지는 모든 언행이 그렇지 않을까? 나를 잘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 수준이 너무 과하거나 악의적이지만 않다면, 잘 보이려는 노력은 질타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가식에 진심과 진실이 담기는 과정을 소개한다. 먼저 반짝이는 부분을 찾는다. 세상 모든 존재엔 반짝이는 부분이 존재한다. 관심을 기울여야 발견할 수 있는 값진 면면을 찾아내 최선을 다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풍선에 공기를 주입하는 것과 같다. 납작했던 진심을 부풀려 확실하게 드러내 보이는 행위가 바로 가식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다시 해석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를테면 대식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누군가는 탐욕스럽다고 눈살을 찌푸릴 수 있지만, 나는 잘 먹는 것이 복스럽다고 생각한다. 마음으로만 간직해 두지 말고 말로 꺼내 칭찬해 주면 된다.
나의 가식은 통상 이런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가식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밝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고, 우중충했던 마음의 날씨가 많이 개었다. 극지의 겨울처럼 어두운 생각만이 가득했던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더욱 많은 사람이 가식의 따스한 빛살 아래 지친 마음을 뉘었으면 좋겠다. 내가 기꺼이 그런 빛살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에도 솔직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솔직함과 무례함의 경계를 절취선 가르듯 명료하게 구분할 자신이 없다.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는 안전하게 가식하기를 택할 뿐이다.
가식에 대한 지난한 변호를 읽어준 이들을 위해 일급 영업 비밀을 공유하고자 한다. 혹시 나를 직접 만날 일이 있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다. 나의 진심 함유량은 부사로 쉽게 판단 가능하다.
좋아요 = 진심 10%
너무, 정말 + 좋아요 = 진심 50%
진짜, 완전, 진심 + 좋아요 = 진심 90~100%
※ 매우 친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친한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신랄하고 솔직한 것이 INFJ의 특징이다.
이렇게 솔직해도 될지 불현듯 걱정된다. 영업 비밀을 공개하고 망한 식당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 어쩐지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 조만간 다른 규칙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시기에 비해 많이 능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자주 진의를 의심받는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혹여 때로 영혼이 없어 보인다면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 내가 행하는 가식은 당신을 아끼기 때문이니, 너무 밉게 보지는 않아 주기를. 이상 가식 예찬론자의 넋두리였다.
- 2023.05
마음 생태보고서
수심: ●○○○○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내게 무해한 사람(최은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179p
[Playlist] 가식이라도 순한 말이 좋잖아요
1. 어떻게 생각해 - 치즈
2. 어떻게 사람이 늘 사랑스러울 수 있어 - 스텔라장
3. Either Way - 아이브
4. SOUL - Young K
5. 욕의 여행 - 선우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