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8] 추신: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잠적하려는 마음

by 용호


나는 혼자일 때도 혼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연을 끊은 채 산간벽지에 틀어박히는 상상을 했다.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도록 휴대폰을 해지하고 종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서 홀연히 혼자가 되는 상상이었다. 나는 남들도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상상 해본 적 있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것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이었다.


자연스레 뒤따르는 질문은 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느냐는 호기심이었다. 나는 무어라 설명하는 대신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아?”라는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대답으로 대화를 갈무리했는데, 그건 설명하기가 귀찮거나 내밀한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도 그 마음의 성분을 알 수 없어서였다.


이 미지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마음은 온전히 혼자가 되고 싶은 마음. 사람들에게 쏟아온 기력을 나에게 할애하고 싶은 마음. 세상과 분리됨으로써 역할과 의무와 기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동시에 내가 영원에 걸쳐 추앙해야 할 샛별을 찾고 싶은 마음. 순간순간의 감정과 감각과 감상에 충실해지려는 마음. 그러면서 어떠한 감흥에도 구애받지 않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것. 어떻게든 요약해 보자면, 오롯한 나의 시간을 갖고 나를 알아가며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싶다는 실존적인 욕구가 뒤엉킨 마음이었다.


물론 그것은 산중에 틀어박히지 않는다고 해서 불능한 작업은 아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일상적인 공간에서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흐트러졌다. 미디어가 시시각각 퍼 나르는 소식, 친구들의 메시지, 하다못해 새벽에 옆집에서 들려오는 실낱같은 대화 소리에도 나는 동요했다.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분초 단위로 증명했으며, 나는 그 증명에 보란 듯이 이염되는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조언하는 템플스테이나 혼자 여행하는 것에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였다. 삿포로 교외에서 작은 식당을 하며 안분지족하는 노부부를 만나면 그들의 안온함을 닮고 싶을 것이다. 파리에서 여유롭게 두 시간 동안 점심을 즐기다 보면 워라밸이 있는 삶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템플스테이를 하다 보면 무소유의 삶을 목표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원하는 나,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좋아 보이는 무언가일 뿐이었다.

때로는 단순한 마음에서 잠적하려는 욕망이 꿈틀대기도 했다. 사람들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사람들과 얽히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기력을 소진하는 사람이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함께 있음으로 인해 내 안의 무언가가 우르르 쓸려나가는 기분을 시시로 겪었다. 그럴 때면 평소에는 흐린 눈을 하고 지나쳤을 사소한 언행들, 이를테면 인도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 화면을 훔쳐보는 모습에도 인류애가 바닥을 쳤다.


나는 사는 이유가 절실했다. 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사는 이유가 절실했다.


"서울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렇지 않니?"


지방에서 상경한 친구들과 뇌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치유되지 않았다. 타노스가 지구인의 절반을 날려버린 것도 정당한 부분이 있다는 어느 방구석 평론은 웃어넘길 수 없는 풍자가 되었다. 타노스가 사람들을 좀 날려버렸으면. 아니, 차라리 나를 소멸시켜 주었으면…. 물론 이런 경우엔 주말 내내 칩거 생활을 하면 나아지곤 했으므로 존재 가치를 회의할 때와는 사태의 경중이 달랐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 혼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곱씹다 보면 종국엔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게 됐다. 그건 내가 잠적하여 끈질기게 자문하고 싶은 질문이었으며, 전역 후 복학하고서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본 질문이기도 했다.


“너는 왜 살아?”


나는 사는 이유가 절실했다. 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사는 이유가 절실했다. 스티로폼처럼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세상에 잊히고 해로운 존재로 전락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이 왜 사느냐는 질문으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렇게 취합한 대답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사는 이유를 찾으려고 사는 거 아닐까?”


덤덤한 말투에 예리한 통찰이 담겨있었다. 잔뜩 구겨진 마음을 곱게 다림질하는, 혼탁했던 마음이 청명하게 개는 답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겠지. 그것을 기다리는 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막막한 앞날을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비추어 보자. 이후로 나는 사람들에게 왜 사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그 문장을 먼 길 떠난 연인이 남긴 연서처럼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꺼내볼 때마다 두근거리고 감격스럽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나 조급함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위안 삼을 구실이 없을 때에 비하면 썩 견딜 만한 기다림인 것 같다.


아마 나는 퇴직하여 경제활동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잠적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퇴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때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감히 잠적 같은 걸 하기에는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는,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먹고 싶은 것들, 이루고 싶은 것들, 만나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들이 별천지의 꽃 무리처럼 가득하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잠적으로 인해 주변에 닥칠 풍랑도 걱정이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엄마는 전 세계를 쥐 잡듯 뒤져서라도 나를 찾아내고 말 것이다.


하여 나는 잠적하고 싶은 마음을 연료로 삼아 글을 쓴다. 글이 나의 숙원을 해답해 주지는 않지만, 방황하느라 지치고 마른 마음을 해갈은 해준다. 지금의 나에게 이만큼 간편하고 안락한 일탈은 없다.


- 2025.04




마음 생태보고서



수심: ●○○○○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넘어지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화자」『달려라 아비(김애란 지음, 메이븐 펴냄)』150p




[Playlist]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때

1. 나랑 갈래 - 곽진언

2. 도망가자 - 선우정아

3. Is It Just Me? (feat. Charlie Puth) - Sasha Sloan

4. 째깍 째깍 째깍(with Beenzino) - 악뮤

5. Track 9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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