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9] 나약하고 이기적인 편지

편지를 쓰는 마음

by 용호


또다시 편지를 쓸 때가 되었다. 펜대를 쥐어야 하는 순간이 다시금 도래하여 마음에 그늘이 진다. 그건 누군가와 이별할 때가 되었다는 뜻, 나약하고 이기적인 나를 조우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우리 학교에는 생일마다 편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있었다. 책상에 편지지를 늘어놓고 철마다 친구마다 다른 편지지를 골라 쓰는 일을 나는 퍽 즐거워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편지를 쓸 일이 줄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을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지기도 했거니와 카카오톡이라는 간편한 수단이 등장했고, 머지않아 그마저도 짧은 몇 줄의 문장으로 대신하게 됐다. 모름지기 어른이라면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의무와 책임에 먼저 분배해야 했다. 수많은 삶의 여유가 뒷전이 되었고, 편지를 쓰는 여유라고 논외는 아니었다.


다시 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한 후임 기자의 퇴사였다. 그는 여러 내외부적 요인으로 회사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나는 그를 보며 사무실 한편 응달에 둔 관목을 떠올리곤 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이울어가는 모습이 그랬다. 누구도 좀체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상황마저도. 나는 팀의 선임으로서, 그 이전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떠한 형태로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감 일정이 코앞이라서, 회사 분위기가 각자도생이라서, 나중에 더 잘해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서. 손쉬운 핑계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나는 그와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쉽게 들 수 없었다.


그가 퇴사 소식을 전해왔을 때 잠시간 얼떨떨했던 것 같다. 사무실 나무는 쉽게 죽지 않았다. 어떻게든 꿋꿋이 살아남는 존재였다. 같은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역사가 되어야 했다. 물론 그가 그렇게까지 회사에 오래 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고 여겼다. 내가 조금 더 잘해주었으면 우리는 조금 더 우리로 남았을지 몰랐다.


그의 퇴사가 얼마 남지 않은 날, 퇴근한 뒤 서랍을 뒤져 편지지를 찾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라프트지 엽서가 있었다.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트북에 초안을 쓰고 다음 날 새벽 편지지에 옮겨 적었다. 쓰고 나니 미안하다는 말뿐인 게 아주 가관이었다. 편지를 받은 후임은 어린 사슴처럼 그렁그렁한 눈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미안한 마음은 더 커졌다. 이렇게 말갛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네. 속죄하는 마음으로 쓴 편지가 누군가의 기쁨이 된다는 건 참 애달픈 일이었다. 뒤늦은 깨달음은 통증을 동반했다.


‘우리가 너무 낯선 사이가 되지는 않기를요.’

내가 말주변이 좋거나 속내를 털어놓을 용기가 있는 인물이었다면 다시 편지를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지금도 1년에 두세 차례는 편지를 쓴다. 물론 헤어지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니고, 보고 싶은데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앞으로 누군가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할 말이 많아졌다.

살다 보면 고백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지 않는 게 상책이고 매사에 침묵이 미덕이라는 중론에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말은 고백이라는 이름으로 발화되어야만 한다. 그 고백에 담긴 마음엔 생명력이 깃들어 있어서, 늘 주의하고 있음에도 느닷없이 뛰쳐나오기도 하고 억누르면 신음하며 나를 안달시키기도 한다. 보통 사랑이나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이 그렇다.


그러나 내포한 성분이 어떠하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발화자의 의도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 수신자의 의향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고백이다. 일방적인 고백은 난데없이 배송되는 선거 공보물처럼 폭력적이고 불쾌할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고맙고 미안하고 함께해서 행복했다는 마음을 전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완전히 져버리고 말 것 같았다. 마음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지금 개봉하지 않으면 서서히 곯다가 종국에는 폐기되고 말 것 같다는 두려움을, 나는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고 나면 미루던 숙제를 마친 것처럼 후련했지만, 동시에 지나온 시간이 헛헛하게 느껴졌다. 편지를 쓸 일이 없었다면, 내가 지나온 시간에 충실했다면 어땠을까. 내게 편지란 일종의 참회문이자 스스로 하사하는 면죄부였다. 나의 편지는 추악했다.

나는 나의 편지가 다시 순수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데 순수해지지 않는다면, 나의 편지는 죄악으로만 남는 걸까.


언젠가 고향 집에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엄마의 명령으로 대대적인 방 정리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MP3부터 각종 서류, 문구까지 온갖 잡동사니로 방은 금세 돼지우리가 되었다. 그러다 책상 서랍 마지막 칸에서 배가 볼록 튀어나온 종이봉투를 발견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군 복무 시절까지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를 모아둔 봉투였다. 순간 가슴께가 찌르르했다. 삐뚤빼뚤한 손 글씨, 알록달록 스티커로 한껏 치장한 각양각색 편지지를 보자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 없이 무구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던 그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사실을 아릿하게 실감했다. 다만 편지에 담긴 마음은 여전히 생생했다. 여기에 유통기한 같은 건 없다는 듯이.


그때의 편지와 지금의 편지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같다. 편지지를 앞에 두고 있는 동안, 나는 오직 한 사람을 생각했다.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나는 내 마음을 오롯이 그 사람에게 쏟았다. 함께한 시간을 헤아리며 가장 반짝이는 편린을 찾고, 우리의 빈칸을 채울 표현을 고르고, 앞으로의 안녕을 염원하는 마음을 한 자 한 자에 실었다. 편지를 쓰는 자로서 최선의 예우였다. 그 마음은 편지가 닳고 해지고 부스러져 물성을 소실하기 전까지는 영원할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내 추악한 편지를 조금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편지를 쓸 때마다 맺음말로 쓸 문장을 정해두었다.

‘우리가 너무 낯선 사이가 되지는 않기를요.’


앞으로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동시에 내가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편지로 우리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그 편지를 발견했을 때 우리의 한 시절을 떠올려 준다면, 함께했던 시절의 열도와 공기를 어렴풋하게나마 회상해 준다면, 메신저로 “잘 지내?”라고 안부를 물어 준다면, 나는 과거의 우리를 더는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아름다웠든 추악했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을 누군가 기억해 준다는 건 무척 경이로운 일이니까.


언젠가 해후할지 모를 당신을 생각하며 오늘도 편지를 쓴다.


- 2023.08, 2024.09




마음 생태보고서


수심: ●●○○○




용서해주는 것, 서툴렀던 어제의 나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 우리는 그런 어제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고 고통을 겪었고 심지어 누군가는 여기에 없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그건 우리의 체온이 어쩔 수 없이 조금 내려간, 하지만 완전히 얼지는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는 다시 돌아왔고 여전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힘들다면 잠시 시선을 비껴서 서로를 견뎌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되돌릴 수가 있다. 근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가 서로를 견디며 왜냐고 묻는 대신 대화를 텅 비운 채 최선을 다해 아주 멀어지지만은 않는다면?


『사랑 밖의 모든 말들(김금희 지음, 문학동네 펴냄)』 117p




[Playlist] 당신의 안녕을 바라며

1. 안녕 - 김윤아

2. 우리 따뜻했던 - 사이로

3. 선인장 (with 심규선) - 에피톤 프로젝트

4. Will I Ever See You Again? - 레드벨벳

5. 그러려니 - 선우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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