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하는 마음
유튜브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소비’를 논하는 영상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품목에 주로 소비하는지 살피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돈을 쓴다는 건 정말 영혼을 건 결정이잖아요. 지금 칼국수를 먹을지 육개장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I am what I buy(내가 사는 것이 곧 나다)’ 정도가 되겠죠. (중략) 돈을 옷 사는 데 쓰고 차 사는 데 쓰는데, ‘사실 나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 책 안 좋아하는 거거든요. 책 좋아하는 사람은 책 사는 데 돈을 써요. 결국은 돈을 어디다 쓰느냐, 시간을 어디다 쓰느냐가 그 사람일 텐데, 저는 돈을 이 미친 짓에 쓰고 있으니까 저는 그런 사람인 거죠. 제가 생각해도 약간 미친 것 같고요. 어쩌겠어요. 고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으니까 즐기고 있습니다.”
욕조에서 뛰쳐나온 아르키메데스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참으로 지당하고 예리한 주장에 "유레카" 소리가 절로 나왔다. 피땀 흘려 번 돈의 향방에 자아의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머릿속에 내 소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한참 자아의 혼란을 겪던 시기였다. 소비의 역사를 복기해 보면 나를 조금이나마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나의 소비 성향을 정의해 보기로 했다. 나는 검약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코흘리개 시절부터 절약하고 저축하는 데 흥미를 붙여서, 어른이 된 지금도 지출하는 항목은 기본적인 의식주나 모임, 기념일 명목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몇백 원을 아껴보겠다고 부랴부랴 온 동네 발품을 팔며 지독한 근성을 발휘한다.
그런 내가 돈을 아낌없이 쓰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수집하는 대상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하지도 않고 사놓고 딱히 쓰지도 않지만, 사서 모으는 행위로 만족하는 방탕함은 내 지출 습관의 아킬레스건이다.
본격적으로 수집에 몰두한 때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최초의 수집 대상은 음반이었다. 난생처음 구매한 앨범은 아마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의 정규 4집 ‘Goodbye Lullaby’였던 것 같다. 당시 내 또래 사이에선 에이브릴 라빈의 ‘Sk8er Boi’나 ‘Girlfriend’가 교가나 다름없었다. 내 동년배 중 에이브릴 라빈 노래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둘 중 하나다. 간첩이거나 전생에 흥선대원군이었거나. 여하간 아빠 차를 타고 이동하는 10분 동안 CD를 틀고 ‘What the hell’을 흥얼거렸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만 해도 앨범을 ‘듣는 용도’로 쓰기는 했다.
내가 케이팝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앨범 수집은 광적인 수준으로 치달았다. 2세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원카소(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의 준말)는 물론이고, 레인보우와 나인뮤지스, 엠블랙, 비스트 같은 중소돌의 앨범까지 섭렵했다. 앨범을 구매하는 데엔 몇 가지 기준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요컨대, 그 그룹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면 인기가 많건 적건, 싱글이건 정규건, 국내 앨범이건 해외 앨범이건, 인기가 많건 적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장을 헌납했다. 한 달에 5만 원 용돈 받아 생활하던 학생으로서 장당 1만 원은 우습게 호가하는 앨범을 사모으는 건 정말이지 기가 막힌 기행이었다.
훗날 한 친구는 나의 흥청망청을 두고 돈이 차고 넘치느냐는 일침을 가하기도 했지만, 나는 분개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머글이 덕후의 지대한 사명감을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들은 몰랐다. 1~2만 원으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니, 그건 참으로 합리적인 소비가 아닌가. 나는 정말이지 인피니트가 대성하여 반도를 호령하길 바랐다. 어쩌면 내가 성공하는 것보다도 더.
내가 마지막으로 구매한 앨범은 2021년 브레이브걸스가 ‘치맛바람’으로 활동한 미니 5집 ‘SUMMER QUEEN’이다. 롤린(Rollin')으로 기사회생 신화를 쓴 그들의 첫 컴백작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앨범 수집이 뜸해졌는데, 그건 돌연히 나의 노력이 무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응원한 상당수의 그룹은 고군분투하다 해체하거나 소소한 활동으로 명맥을 겨우 이어 나갔다. 앨범 판매 수익은 탐욕스러운 소속사 대표의 BMI 지수에만 일조하는 듯했다. 나의 노력과 관심이 남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간 모은 앨범을 중고장터에 처분하면서 아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탈덕’이 아닌 ‘완덕’이었다.
다음 수집 대상은 반팔 티셔츠였다. 사실 과거의 나는 반팔 티셔츠를 선호하지 않았다. 왜인지 반팔 티셔츠는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표명하는 ‘무신경한 옷’이라고 생각했고, 한여름에도 반팔 셔츠를 즐겨 입었다. 그러다 군 생활을 하며 반팔 티셔츠의 맛을 알아버렸다. 운동과는 벽을 쌓고 살던 나의 빈약한 몸뚱이에 나름의 근육이 붙었고, 반팔 티셔츠의 멋은 옷맵시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주변에서 옷맵시를 칭찬해 주니 마음이 들썩였다. 방앗간 못 지나가는 참새마냥 주말 외출을 나가 대구 동성로에 군집한 SPA 브랜드에서 반팔 티셔츠를 쇼핑하는 취미가 생겼다. 심지어 반팔 티셔츠는 가격도 저렴했다. 곤궁한 군인의 지갑 사정에도 거뜬히 수집할 수 있는 품목이었다.
입어 버릇하다 보니 반팔 티셔츠는 참으로 매력적인 옷이었다. 간편하고 대중적이며 색감, 프린팅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반팔 티셔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편하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사람. 지금까지 살아온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나는 깐깐하고 사람을 가리며, 하품도 지겨울 정도로 따분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옷 한 장 마련하는 것만으로 탈바꿈하는 기분이 들어 티셔츠 수집을 끊을 수 없었다.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면 반팔 티셔츠 소비의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화려한 서퍼와 해변이 그려진 쨍한 네온 컬러 티셔츠는 여름휴가 때, 심플한 로고가 자수로 놓인 핏한 랄프로렌 폴로 티셔츠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날 때 입을 구실로 장만했다.
문제는 내가 그리 다양한 상황에 노출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였다. 노선을 따르는 버스처럼 집과 회사만 착실하게 오가는 데다, 쉬는 날에는 지박령에게 빙의하여 칩거하기 일쑤인 내가 총천연색 티셔츠를 입을 상황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게다가 SPA 브랜드의 제품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는 폭로를 접하고 나선 티셔츠에 대한 애정이 한겨울 베란다에 내놓은 찌개 냄비마냥 차게 식었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사 지른 티셔츠는 방 한편에 고이 쌓여 있었다. 그대로 수십 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화석이 될 것만 같았다. 미래의 인류 혹은 외계인은 티셔츠 화석을 이렇게 해설할 것이다.
“일부 지구인은 목화솜을 착취하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악취미가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착취와 환경오염의 증거를 집에 고이 모셔 두었지요. 자신의 치부와 죄악을 모셔 두다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요?”
여기까지는 완결된 수집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은 가장 오래 수집해 온 단 하나만이 수집 대상으로 살아남았다. 바로 책이다. 어렸을 적 나는 책을 일종의 생츄어리(sanctuary; 안식처,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복잡다단한 성정과 상념과 정서를 책에 의탁했다. 『나의 오렌지 나무』에서 나의 추악함을 면죄받았고,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나의 고독은 온전했다. 당시 작가들의 서정은 내게 유일한 창이었다. 책을 한 권 한 권 모으며 닫힌 마음을 허물어 실낱같은 바람길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엔 성장을 향한 욕망을 책을 사지르는 일로 승화시키면서 책 수집이 골칫거리가 되었다. 나는 일기장에 매년 새해 목표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가장 먼저 적는 사람인데, 더 나은 사람을 정의하지는 못해도 독서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떻게든 일조하리라는 확신이 생겨버렸다. 서가를 채워갈수록 나의 지성이 향상되는 느낌…. 나의 지성을 빽빽한 서가로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북호더라면 이런 뒤틀린 욕망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급기야 이제 책 소비는 종잡을 수 없는 습관적인 행위에 가까워졌다. 표지가 예뻐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작가라서 책을 사 모으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의 내가 마음의 병을 앓거나 사랑이 고플 때를 대비하여 처방할 책을 쟁여 두기도 한다. 도서에 딸려 오는 굿즈가 갖고 싶어서 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결제 버튼을 누르거나 한정판이라고 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제 버튼을 누른 적도 허다하다.
그리하여 여느 독서광들이 그러하듯, 책을 사는 속도를 책을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서재는 이미 포화 상태다. 하지만 도서 앱을 쥐 잡듯 탐색하는 손가락을 막을 수는 없다. 어느덧 숨쉬기처럼 익숙해진 행위를 멈출 방도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앞으로 더 열심히 읽어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잡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수밖에.
소비의 역사를 돌이켜 보니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인 것 같다.
용의 머리보다는 용의 날개가 되고 싶다(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편하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팔색조가 되고 싶다.
꾸준히 성장하는 인재가 되고 싶다.
이 중 이룬 것이 있느냐고 하면… 유구무언이다. 주지하듯 수집은 그 자체로 효능이 없다. 재정만 악화시킬 뿐이다.
한때는 내 삶의 즐거움이자 희망이었던 수집이지만, 지금은 수집의 역사를 회상하면 울적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나의 수집에는 심리적으로 위태로울 때 몰두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바닥났을 때 물건으로 마음의 빈칸을 채웠고,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되는 소비로 성취감을 대체했다. 물건이 많은 만큼, 나는 불안했다. 어쩌면 내가 수집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에 붙였던 반창고인지도 모르겠다.
애석하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현재는 수집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책꽂이에 입성하지 못하고 내 무릎께까지 쌓인 책 탑이 네다섯 기는 된다. 발 디딜 공간도 없이 쌓여 있는 책을 보면 이사를 하긴 가야 할 텐데 이렇게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이사를 하는 게 가능키나 한가 싶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플 때 물건으로 미봉하는 미련한 처사는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집 앞에는 택배가 애처롭게 내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고…. 뭐, 인간이란 원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요즘은 물건을 사는 시간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데 할애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때 문장과 감상을 수집할 때가 있었다. 보통 수집하는 마음 밑바닥에는 가책이 수돗물을 가열하고 남은 염소처럼 깔려 있다. 그러나 군대에서 책을 읽은 뒤 편지지에 손 글씨로 감상문을 쓰고, 블로그에 음악과 영화 평론을 쓰던 기억을 회상하는 마음에는 한 톨의 모난 성분도 없다.
수집의 가치는 희소성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문장만큼이나 희소한 수집은 없을 테다. 나의 생각과 표현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지금까지 치열하게 길러온 수집력을 발휘할 때다. 방치해 두었던 마음의 창고를 연다. 도톰하게 쌓인 더께를 털어내듯 오래된 기억을 살피고, 커튼을 걷어 햇살을 들이듯 감정에 빛살을 비춘다. 돈도 들지 않고 공간도 차지 않는 수집이라니, 이런 수집이라면 마다할 여지가 없다.
- 2025.05
마음 생태보고서
수심: ●◐○○○
방 한편에는 내가 만든 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엎어져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생각 사는 핑계(이소호 지음, 민음사 펴냄)』 25p
[Playlist] 그 시절 내 음반의 8할은 스윗튠
1. 인피니트 - Can U Smile
2. 나인뮤지스 - Dolls
3. 레인보우 - Mach
4. 카라 - Step
5. 러블리즈 - 그날의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