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7] 꿈과 망상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를 과신하는 마음

by 용호


원래 나는 다른 이름으로 살 운명이었다. ‘주’ 자 돌림을 사용해서 ‘이용주’였다. 어머니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용주로 불리며 살았을 터였다. 어머니는 그 이름을 싫어했다. 형용하기 어렵지만 불온하다고 했다. 그래서 시댁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작명소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작명가는 일가에 회자할 말을 남김으로써 돈값을 톡톡히 했다.


“순천에서 가장 잘 살 아이야. 돈도 잘 벌고 효자로 소문나겠어.”

당대 부모로서 그보다 더 흐뭇한 찬사를 듣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장성하여 사연을 들은 나는 “왜 순천이야? 난 순천에서 살 생각 없는데”라며 우문 같은 볼멘소리를 했지만, 엄마는 작명가의 예언이랄지 아첨이랄지, 여하간 그의 호언(好言)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흡족한 눈치였다. 막내아들의 창창한 미래를 확신하는 당신의 형형한 눈빛은 영원히 꺼질 것 같지 않았다.


가끔 그 일화가 생각이 났다. 내리막길을 속절없이 미끄러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덮칠 때마다 어김없이 그랬다.




어릴 적 나는 꿈을 이룬 미래를 세뇌하듯 상상하곤 했다. 꿈의 상세는 상이했지만 종착은 같았다. 성공하고 싶다. 대단한 유명인이 되지는 않아도, 업계에서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인물은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건 대단히 바라지도 않았다. 침침했던 학창 시절에 자수성가라는 샛별을 띄워 침로로 삼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야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모범적인 학생으로 아등바등 살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고, 하라는 것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지 않았지만,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다져두자는 계획이었다. 막내아들이 책상머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데 재능이 있음을 눈여겨본 부모님은 내가 계속 공부하면 크게 성공할 거라 확신했다. 문제는 내가 돌연 학업에서 뜻을 거두고 글을 선택했다는 거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며 교대 문턱에서 발을 돌렸고, 대학 시절엔 휴학하며 몇 년간 등단에 목을 매기도 했다. 문예계에 재능과 끈기를 겸비한 인재가 차고 넘친다는 것을 모르고 품은 치기였다.

어찌어찌 나는 목표를 이뤄냈다. 글을 쓰며 입에 풀칠하는 사람은 되었다. 주지하듯이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지만.


스물 후반이 되면 번듯한 초상까지는 아니어도 청사진 정도는 완성했을 거라고 어림했다. 그러나 여전히 새하얀 도화지를 앞에 두고 주저하는 기분이다. 그은 몇 가닥의 선마저도 삐뚤빼뚤 낙서 같기만 하다. 저마다의 삶에는 정답이 있는데, 억하심정으로 고집을 부려 주야장천 오답만 택한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실수와 패착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메타 인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는 건 사치라고 했다. 급기야는 목구멍에 포도청이 되어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우스개를 했다. 나는 순식간에 자기 객관화를 못 하면서 배까지 부른 철딱서니가 되어버렸다.


유예되는 꿈을 바라보며 마음은 자꾸만 주저앉았다. 주저앉아서는 계속 눌러앉아 있고 싶어 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음침한 속삭임이 귓전에 맴돌았고, 괜한 고집을 부려서 주변 사람들이 실망하게 됐다는 자책감과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납덩이처럼 잠자리를 짓눌렀다. 작명가의 말은 끈적한 늪같이 나를 밑바닥으로 잡아당겼다. 어쩌면 그는 실로 영검한 인물이었고, 나는 반항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걸까? 교사가 되어 순천에서 살았더라면, 등단하겠다고 오기 부렸던 시간에 대학원에서 조금 더 깊게 공부했더라면…. 나는 내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정법을 잇다 보면 우주의 분진처럼 한없이 소침해지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나를 과신하는 마음은 그 칠흑 같은 우주에서 탄생했다. 깎인 자존감을 믿음으로 보수해야 했다. 다음번엔 웅대한 운이 따라줄 것이라고 막연한 희망을 주입해 마음을 일으켰다.


나를 과신하는 마음은 그 칠흑 같은 우주에서 탄생했다. 깎인 자존감을 믿음으로 보수해야 했다. 이번에는 운이 좋지 않았다고, 다음번엔 웅대한 운이 따라줄 것이라고 막연한 희망을 덧대어 야윈 마음을 불렸다. 비록 그게 자만과 오만과 아집에 불과할지라도. 진부하지만 나를 다시금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글로 성공할 깜냥이 없다는 실상을 인정한다. 과신하는 마음은 주술에 가깝다. 내겐 별다른 삶의 낙이 존재하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어제보다 조금 더 잘하게 되었다는 성취감, 그리고 나의 이상에 근접하고 있다는 미미한 진일보의 감각만이 나를 내일로 이끈다. 어제와 똑같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혹은 숙제하듯 생존을 위한 업에 분투한다면 나는 삶에서 재미도, 의미도, 까닭도 찾을 수 없다. 나는 삶을 부지할 맹목적인 믿음이 필요했고, 그 믿음의 대상을 꿈을 이루는 나로 삼은 것이다.


여전히 내가 글로써 미래를 일궈보겠다며 분투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실은 부모님 외의 거의 모든 지인이 안다. 글을 쓰는 직업을 탐탁지 않아 하는 부모님께는 비밀로 해두었다. 당신들은 내 직업이 잠시 거쳐 가는 이정표 같은 거라고 믿는 눈치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작명가와의 일화를 언급하며 지금이라도 공부할 뜻이 없느냐며 묻곤 한다. 당신에게 내가 구상한 미래를 고백하는 건, 그 구상을 실현하고 난 언젠가의 일일 것이다.


요즘은 부쩍 마음껏 자신하던 시절이 그립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한 의욕과 열정을 대가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며 더욱 그렇다. 시간을 내어 키보드 앞에 반나절을 꼬박 앉아 있었지만 한 장도 제대로 쓰지 못한 날이면 “너는 어떻게든 해낼 아이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목소리가 맥없이 흩어진다. 나는 틀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는 것보다 내 주변 사람을 더 믿는다. 나의 믿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해준 말을 극약으로 처방한다.


“나는 네 글 좋아해.”


“기자님, 꼭 책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작가가 되어주세요.”


친구들과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응원은 물론이고 작명가의 단말도 가끔은 써먹는다. 나는 결코 민간신앙이나 무속 같은 불가지의 힘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말의 힘은 믿는다. 말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행동을 바꾸니까. 말과 말이 모이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

언젠가는 꿈을 좇는 데에도 옳은 나이가 있고, 어떤 나이에는 꿈이 죄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21세기판 성장 서사다. 그러나 나는 반전 없는 서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게 아직 도래하지 않은 반전을 믿고 뚜벅뚜벅 점진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선택이다. 그러면 언젠간 서사가 나를 산뜻한 결말에 데려다줄 테니.


아직은 남들이 뭐라든 나를 무람없이 믿어보고 싶다. 한 줌의 의지라도 남아있는 한 현실을 거역해 보겠다는, 비싼 이름값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발버둥이다.


- 2023.02, 2024.05




마음 생태보고서



수심: ●●◐○○




종종 그런 의문이 든다. 내 방에서 스탠드의 주홍빛 조명 아래 앉아 꾸벅꾸벅 졸아가며 책을 읽는 밤이면, 정신을 차리려고 침대 쿠션에 기댄 자세로 천장의 한구석을 멍하니 올려다볼 때면, 눈이 시큰거려서 질끈 감았다 뜨고 다시 질끈 감기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눈자위에 물기가 어리는 것을 느낄 대면, 나는 스스로가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쾌활한 사람이 되기를, 그런 사람인 척하기를, 척하다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기를, 누구에게든 스스럼없이 다가가 한바탕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기를, 마치 나의 부모가 나를 낳아 기르는 내내 소망했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온 힘을 다해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우리는 같은 곳에서(박선우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Playlist] 주저앉은 마음을 일으키는 노래

1. 행운을 빌어요 – 페퍼톤즈

2. High Hopes - Panic! At the Disco

3. 물의 여행 - 윤하

4. 덩크슛 – NCT DREAM

5. 달팽이 – 투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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