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호 Apr 27. 2023

[마음 2] 영원처럼 오래될 다짐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 마음


내겐 태어났을 때부터 동고동락해 온 고향 친구가 한 명 있다. 민둥머리 시절부터 다크서클로 줄넘기를 하는 사회인이 되기까지 거의 모든 일생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다. 초중고 시절 학교는 물론, 학원과 과외도 같은 곳을 다녔고,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역도 같아 지금은 한 집을 사이에 두고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다. 내 군 시절과 서로의 대학 시절을 제외하면 항상 붙어 지냈던 셈이다.      


우리가 서로의 내력을 선명하게 꿰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시콜콜한 연애담부터 술 한잔 기울이며 나눠야 할 법한 집안 내력까지 안 나누는 이야기가 없다. 그러다 보니 누가 잊고 있던 것을 서로가 상기시켜 주는 경우가 왕왕 있다. 둘 다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편이라 ‘내가 그랬다고?’ 하며 어안이 벙벙해지기 일쑤지만 말이다. 그건 뭐랄까, 컴퓨터 본체에서 삭제한 파일을 외장 하드 드라이브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기분이다. 기억하고 싶은 일도, 기억해야 하는 일도 참 많은 세상에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어린 시절 그의 모습이 그렇다. 내 기억 속 그는 아주 강단진 아이였다. 어떤 일이든 척척 멋지게 해내는 아이였고,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웃을 줄 아는 아이였으며, 한 마디로 내가 아는 중 가장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곰곰 생각해 보면 그가 대부분의 일을 나보다 먼저 경험해서 더욱 그렇게 느꼈던 듯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번 것도, 술의 쓴맛을 알게 된 것도, 자취를 시작하며 제 한 몸 건사하는 것이 몹시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은 것도 그가 먼저였다. 그의 일상을 나는 무용담이라도 되는 양 퍽 흥미진진해했다. 속으론 나와 달리 매사에 어엿한 그를 내심 동경하면서였다.


지금 그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얘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는 표정이다. 넌 내가 아는 중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고 언젠가 말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하나도 안 강한데.”


아니라고, 넌 정말 강한 아이였다고, 적어도 내겐 그랬다고 항변할 수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스물 어느 때의 기억이 생선가시처럼 목울대에 걸려 있는 까닭에서였다.      




대학 생활을 한답시고 고향을 떠나 있을 당시의 일이다.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잠깐 올라갈 일이 있는데, 집에서 지내도 돼?”


되지 않을 리 없는 요청이었다.      


졸업마저 나보다 먼저 한 그는 취업을 위한 면접이며 교육으로 서울엘 왕래해야 했다. 까무룩 땅거미가 지고서야 집에 돌아오는 날이 많았던 그를 기다렸다가 우리는 늦은 저녁을 함께 먹곤 했다.      


“힘들지 않아?”

“힘들지.”

“너 참 대단하다.”

“뭐 어쩌겠어. 해야지.”     


우리의 밥상엔 별게 없었다. 맑은 된장국과 스팸, 계란 프라이, 이따금 치킨으로 소박한 사치. 나는 그에게 제대로 된 밥 한끼 대접하지 못하는 게 늘상 마음에 걸렸고, 그는 싹싹 비운 공기를 내어보이며 그런 나를 괜스레 미소짓게 했다. 서로의 오늘을 반찬 삼아 입맛을 돋우던, 함께라는 든든함 덕분에 마음의 허기는 지지 않았던 순간.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을 듯한 기억이다.


타향살이가 지칠 법도 하건만 그는 그 다운 의연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매일 지하철에 올랐다. 그 시절의 그를 생각한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관광 목적으로 몸을 싣곤 했던 지하철에 매일 오르게 되리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어떤 생각을 하며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오고 갔을까? 이불 압축팩처럼 꽉 찬 사람들 속에서. 정수리에 내리 꽂히는 들숨과 날숨의 께름칙한 온기를 느끼며. 그는 체구가 아주 작은 아이이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당시는 날씨가 꽤 더웠으니 숨의 열도가 더욱 매캐했겠지. 자신의 머리 위 모든 사람들의 숨을 받아내면서, 그는 어쩌면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을 물끄러미 바라봤을 것이다. 그 땅과 자신이 얼마나 가까운지 실감하면서. 영역을 사수하려 버티는 수많은 발들 틈에서 쓰러지지 않으려는 자신의 작은 발을 비교하면서. 그러다 문득 바닥 아래의 어딘가를 상상하지는 않았을지.     


나는 그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무의식 중에라도 그런 상념 언저리에 닿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가 고개를 떨군 채 밥을 두어 번 떠 입안에 밀어 넣었을 때, 돌연 무언가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돌이킬 때마다 스스로에게 섭섭하고 서운한 순간들이 있다. 타인의 내밀한 마음 앞에, 그것이 불붙은 공이라도 되는 양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그렇다. 마음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그때 어떻게 대처했을까? 안아주었을까? 같이 울어주었을까? 내 마음에 서투른 만큼이나 타인의 마음에도 서투른 나는 고작 “많이 힘들었구나” 하며 휴지를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초라한 위로였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하는, 아주 깊은숨 같은 말에 걸맞지 않은 가벼운 위로였다.

      

여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단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일찍이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사회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았다. 어린 소녀에게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한 세상을, 혹여 그가 감내해야 했을 의뭉스러운 시선을 비난하다가, 이윽고는 그의 밝은 면에 쉬이 끌리곤 했던 나의 무심함에 치를 떨었다. 잘하겠지. 넌 강한 아이잖아.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넌 걱정 안 해. 힘이 되기는커녕, 의무와 책임을 지우는 말에 불과했던 그 무심함은 잔인했다.      


그는 다음날부터 다시 씩씩하게 길을 나섰고 머잖아 취업에 성공했다. 사회인의 첫발을 내디딘 그의 모습은 내가 아는 대로 당당했다. 나는 당시의 내가 조금이라도 안심했을까 봐 두렵다. 친구가 취업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내가 선망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을 한참 털어놓다가도, 불현듯 말간 웃음으로 무마하는 그의 모습은 하얀 거짓말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하얀 거짓말에 마음을 쉬이 빼앗기는 사람이었다.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후 어느 때부턴가 나는 어떤 장면 앞에서 정신을 팔았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연히, 그건 어떻게도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면 아주 조금 슬퍼졌다. 때로는 몹시도 그랬다. 나는 거대하고 단단한 빙하를 볼 때마다 그를 곰곰이 생각했다.


빙하는 녹아내리는 존재였다. 몹시도 단단했던 것이 허물어지는 것. 본체에서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 모든 빙하 붕괴의 면면 위로 그의 모습이 중첩됐다.


작아지는 빙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손수건을 챙겨 다니는 것. 가까운 거리는 산보 삼아 걸어 다니는 것. 에어컨을 켜는 대신 집의 문을 열고 바람을 들이는 것 정도.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그가 원할 때 맥주 한잔 기울여 주는 것. 이 세계에 함께 머무름으로써 이겨낼 용기를 주고 응원하는 것. 그것 외의 대단한 도움을 나는 알 수 없었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그의 곁에 있자는 마음만을 지켜왔다.      


소박한 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소박한 나의 쓸모를 믿는 것. 그것은 그가 내게 준 수많은 가르침 중 하나다.


누군가는 이런 마음을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일개 개인이 아무리 악착같이 노력해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빙하가 녹는 것이나 거북이를 살리는 일엔 별 효력을 내지 못하는 부질없는 노력이라고. 그리고 사람에겐 사람보다 돈이 더 큰 위로가 되는 세상이라고. 그들의 말은 아마도 맞을 것이다. 거대한 존재 앞에서 한없이 겸허해지고 겸손해지는 것은, 내가 그것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내게 부질없는 노력을 하려는 마음은 중요하다.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분진 같은 내가, 분진만큼의 작은 의미를 이 사회에 남길 수 있다면. 스스로의 존재를 회의할 때마다 그런 소망을 곱씹곤 했다.


나의 소박한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나의 소박한 쓸모를 믿는 것. 그것은 그가 내게 준 수많은 가르침 중 하나다.     


내게 그는 예전에도 지금도 아주 강한 사람이지만, 이제는 그가 강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어쩌면 여느 누군가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그가 통과해 온 시간들은 이겨내는 시간이 아닌, 버티어내는 시간이었을 테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빙하는 뜨거운 볕 아래 어떻게도 유리할 수 없으므로. 그리고 그는 어느 때부턴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언뜻 구김살도 비치고 싫은 소리도 한다. 솔직해진 지금의 그가 나는 훨씬 좋다.       


하여 지금의 내가 그에게 전하고픈 말은 이런 것이다.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아. 힘들다고 느껴도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세상이 점점 자비 없어지기 때문이지. 빙하는 줄곧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세상이 견딜 수 없이 뜨거워져서 언젠가의 모습을 잃고 마는 것처럼. 달라진 건 세상이야. 잘못은 세상에게 있어. 그리고 네게 약속할 수 있는 단 하나는, 너는 절대 혼자가 될 수 없다는 것. 내가 언제고 부질없는 노력을 멈추진 않을 거라는 것. 그러니 너 또한 지금처럼 이렇게 있어달라는 것. 남사스러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우린 너무 가까운 사이이지만, 아주 오래도록 남을 다짐을 가슴에 아로새긴 채 그의 곁에 머무르고 싶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곁에 머무르는 것이 맞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그가 메신저로 집 근처의 맛있는 고깃집을 찾았다고 한다. 언젠가 같이 가자고 하기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이번 주말을 제안했다. “그래!” 하는 흔쾌한 승낙이 돌아오고 나는 조용히 미소한다. 그러고 보면 너는 전혀 변하지 않았구나. 어쩜 이렇게 딱 좋을 때 나를 찾아줄까. 넌 여전히 내게 든든한 존재이구나. 네가 내게 머물러주고 있는 거였구나.     


빙하는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이토록 이기적인 시대엔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어떤 부분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이토록 무정한 시대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빙하와 우리를 지키기 위한 부질없는 노력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연대는 그렇게 결연한 것이라고, 누가 뭐래도 무작정 우겨보고픈 마음이다.


- 2019.06 & 2023.04




마음 생태보고서




수심: ●●○○○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지음, 곰출판 펴냄)』 226p




오늘도 무사히 버텨준 친구에게 헌사하는 노래

1. 오늘 밤은 평화롭게 – 데이브레이크

2.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 하이키

3. 뒷모습 - 정승환

4. Little Runaway - Benson Boone

5. SPACE MAN – Sam Ryder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 1] 나는 하루에 두 번 몹시 나쁜 사람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