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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레 비지 Oct 31. 2019

다시 돌아간다면 (feat. 돈 떼먹힌 이야기)

지난주에 대학 동기인 친구 J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녀는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이번엔 5년 만에 귀국을 한 거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는 한참 동안 대학시절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동기 애들 만났는데 그 교수님 그 과제 낸 건 지금도 화난다고 그랬어. 그런 과제는 왜 낸 거야?" "과에서 실무에 필요한 건 하나도 안 가르쳐줬어. 프로그램도 다 독학했다니까." "수업내용이 하나같이 낡고 쓸모없어. 20년째 같은 수업이라니." "우리 학년에는 디자인은 못하면서 허세에만 찌든 선배들이 많았어. 맨날 표절이나 하고. 못하면 나서질 말아야지."
 
그렇다. 대부분 학교 욕이었다.ㅎㅎ

J는 최근 고백부부란 드라마를 인상 깊게 봤다고 했다. 부부가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의 기회를 얻게 되는 내용인듯했다. J는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다른 건 몰라도 대학 때 만난 친구들이 너무 소중해서,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동기들과 연락하고 지내진 않지만 학교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다. 우린 어렸고 열정적이었고, 그땐 참 뭘 해도 재미있었지.
 
하지만 인생사, 어떻게 좋은 일만 있을까. 힘든 일도 있었다.




2
학년 마치고 휴학 꼬박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3학년   등록금과 1  용돈을 모았다예금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여갈 무렵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
 잠깐만 예금에다 넣었다 빼야 되어서 그런데 몇달만 빌려줄  있어복학할  다시 돌려줄게아이고내가 설마   떼먹겠니."
 
그렇다설마는 사람을 잡는다나는 돈을  먹혔다여유 있는 대학생활을 해보려고 1년간 열심히 일했건만  대가가 가난과 우울일 줄이야기가 막혔다그나마 등록금까지는  빌려줘서 다행이었달까.
 
나는 3학년 생활을 하며 용돈을 충당하기 위해(집에 말하면 난리   같아서 비밀로 했다그래서 따로 용돈을 받을 수도 없었다.) 졸업식과 입학식  선물 받았던   되지 않는 금목걸이와  팔찌금귀걸이를  팔았다복학하면 그만두려고 했던 아르바이트도 계속했다그렇게 나에게서 나올  있는 돈을 죄다 짜냈는데도 인쇄소에  과제 출력비 10만원이 부족해서  과목을 낙제당했다처음으로 학고라는  맞아봤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과제를 제출만 했으면 A여서 차석으로 장학금을 받을  있었을 거라 했다하지만 그보다 억울했던  그때 맞은 학고 때문에 졸업학점이 아슬아슬해졌다는 것이다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해 남들  노는 4학년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전공수업을  채워 들어야 했다그것도 친하지도 않은 후배들과 말이다여윳돈이 없으니 동기들과의 술자리는 자연히 빠지게 됐다사준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그렇게 즐거웠던 나의 대학생활은 3학년 때부터 도미노처럼 한순간에 와르르 쓰러져 버렸다엎친  덮친 격으로 베스트 프렌드 Y 갑자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우리는 크리스마스   앞에서 만나 손바닥을 펼치고 각자 가진  전부를 세어보았다동전까지 탈탈 털었지만 3천원이  되지 않았다 돈으로 불꽃 막대기와 몽쉘  박스를 샀다공원에서 불꽃 막대기를 돌리며 글씨를 만들면서 놀았다그리고 우리집에 가서 몽쉘을 쌓아 케이크처럼 만들었다Y 가져온 루돌프 머리띠를 쓰고 몽쉘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부는 사진은 지금도 갖고 있다이보다  가난한 크리스마스 파티는 없었을 텐데도그래도 우리는 웃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돌려받지 못한 돈에 미련이 사라졌다사람을 잃는 것에 비하면 돈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학생 신분인 내가  큰돈을 선뜻 빌려줄  있을 정도로  사람을 믿었다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사람이었다나는 어떻게든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어색함을 이겨내고 아무렇지 않은  말을 걸었다상대는 미안함 때문인지 창피함 때문인지것도 아니면 앞으로도 돈을 갚을 생각이 없어서인지 불편해하며 노골적으로 나를 피했다. '내가 처음에 돈을 돌려달라고 너무 압박했나?' '가까운 사이라도 돈은 빌려주는  아니라잖아빌려준  실수였어.' 생각지도 못한 냉정한 태도에 한동안은  자신을 탓했었다사이비 종교에 발을 담근 사람처럼 이성적이지 못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서  사람을 진심으로 미워하지도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이젠  사람이  뻔뻔하다고 생각한다미워하기도 피곤하다그냥 앞으로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드라마같이 예쁜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진다다정한 선배들과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 마시며 수다 떨던 기억중국집에서 자장면 배달시켜서 야외수업했던 기억싸고 맛있는 학식을 먹고 좋아하는 철학교수님 수업을 1교시부터 8교시까지 들었던 기억축제  포장마차를 하며 그때까진 먹어보지도 않았던 닭똥집을 열심히 볶던 기억영화 동아리광고 동아리 어딜 가도 환영받으며 다른  사람들과 친해졌던 기억. MSN 메신저로 서로 좋아하는 음악 MP3 교환하며 밤을 새웠던 기억  매일매일이 버라이어티해서 싸이월드에 학교생활 사진을 올리는  나의 소소한   하나였다내가 생각해도 최선을 다해 놀았다그러나 행복한 대학생활을 떠올렸을  마냥 웃을  없는  힘들었던 날의 기억이 꼬리를 물고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단 대학생활만 그럴까 인생을 돌아보면 그런 극단적인 일들이 동시에 자주 일어났다사주팔자에 초년 운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랄까어쩌면 반반도 아니고 힘든 일이  많았다하지만  역시  친구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나은 선택을   있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거란 생각이 든다그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존재함으로 지금의 내가 우리 가족이 있기에 후회도미련도 없다.

지금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안다남의 이목보다  인생에서 진짜로 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과거의 아픈 경험들로 인해  나은 지금을 살게 되었으니  괜찮다그리고 새삼  우울했던 시기에 나를 응원해주고 곁에 있어준 친구들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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