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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한 봉지'에 마음이 통하다.

취향 동지들

by DesignBackstage

츄러스 짱구스낵, 알밤 동동 막걸리. 이 두 가지 제품을 마트에서 발견하면 심장 박동수가 빠르게 증가한다. 나는 마트에 가면 가장 먼저 스낵 코너와 주류 코너로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제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제품은 인기제품은 아닌듯하다. 두 제품이 모두 진열된 모습을 보기란 드물고, 심지어 그중 하나만 마주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아 금세 팔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진열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제품을 발견하면, 마치 내 취향을 알아봐 준 것 같아 누군지도 모를 상품 진열 담당자에게 괜히 마음이 갔다. 내 취향을 알아봐 준 이 마트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어 있었다.


참 희한하다. 말없이도, 본적 없이도 마음이 닿는 그럼 경험을 종종 한다.



최근 책을 읽다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 제목을 보는 순간 두근거렸다. 우아함과 가난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흥미로웠다. 김지선 작가의 <우아한 가난의 시대>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난하지만 우아하게 사는 방식에 대해 써내려 갔다. 주변 지인들과 나눈 대화, 일로 만나게 된 동료들과의 경험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지만 말투는 친근하고 따뜻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친한 친구와 쉴 틈 없이 통화한 느낌이었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글과 좋아하는 브랜드, 심지어 평소 자주 하는 생각까지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 십여 년 동안 패션매거진 에디터로 일했던 그녀는 다양한 종류의 사치를 경험했다고 했다. 명품브랜드의 신제품, 손대기가 두려운 하이주얼리, 고가의 슈퍼카 등을 다뤘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다 여겨지는 다양한 제품을 만난 그녀가 진정한 럭셔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나도 같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일까?' 그녀는 햇빛에 그을리 피부를 가진 이가 럭셔리해 보인다고 했고 나는 자신감 있는 표정과 걸음걸이를 가진이들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나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당당함을 지닌 이들을 동경했다. 비록 동경하는 대상은 달랐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노력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우린 꽤 닮아 있었다.


김지선 작가는 삶을 충만하게 보내는 이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검약에는 확실히 낭비를 해본 사람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산만한 경험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까지 결국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 여기며 경험주의적 삶을 지향하던 나는 눈이 커졌다. 저자와 독자로 만난 게 아니라면, 한바탕 같이 손뼉 치며 "맞아, 내 말이!" 맞장구쳤을 것이다.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주길 바라는 사회에서 시를 읽지 못하게 됐다는 작가의 말과, 고독하다는 건 성공이나 실패 때문이 아닌 도시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꽤 큰 공감과 위로를 해주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 살려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잃고 외로워했구나 라는 생각에 자책을 멈추게 되기도 했다.


상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나와 생각의 결이 같구나 라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만화 속 전구가 켜지는 장면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반짝이며 몸이 살짝 저릿해진다. 순간 눈빛이 달라지는 그 순간을 참 좋아한다.


매일 마주하는 직장 동료나 지인들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취향 공동체와의 만남이 오히려 더 깊고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수많은 제품들 중 같은 것에 눈길이 머물고, 비슷한 문장에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 서로를 설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통하는 그런 취향의 동지들. 그들을 통해 나는 이해보다는 공감을, 표현보다는 진심을 느끼며 조금 더 나다워져도 괜찮다는 믿음을 쌓아가게 된다. 어쩌면 그 믿음이 내 삶을 조금 더 우아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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