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내게 건넸던 말

에필로그

by DesignBackstage

늘 궁금했다.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다 알까? 남자친구가 생긴 것도, 친한 친구와 말 다툼한 것도, 좋아하던 가수가 바뀐 것도 모두 다 알았다. 어떻게 알았나며 깜짝 놀라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는 머리 뒤에도 눈이 달렸어!" 머리 뒤 눈이 달린 게 아니라 우주 잠망경이 달려있는 것 같았다. 여하튼 엄마에겐 묘한 능력이 있었다. 배스킨 라빈스 엄마는 외계인을 먹으며 '우리 엄마도?' 라며 한번쯤 의심하곤 했었다.

엄마는 내 행동으로 나의 변화를 읽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다가도 방에 들어가 통화가 길어지는 걸 볼 때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일 조잘거리던 딸이 어느 날 말없이 방에 들어가 뻥이요 과자 한 봉지를 다 비운다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평소와 다른 행동패턴으로 엄마는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모호한 부분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유추하면 대부분 퍼즐이 맞았던 것이다. 어릴 때 나는 그런 엄마가 항상 놀라웠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엄마가 되고 알았다. 나도 초능력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능력은 상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에서 생겨난 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가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살피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초능력이 생겼다. 말없이 피는 꽃, 평소와 다른 말투, 자주 쓰던 컵, 대화에서 느껴지는 서로 다른 관심사. 그 모든 건 조용하지만, 분명한 신호였다.

그 신호를 알아채기 위해 필요한 건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관심 있게 바라보고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었다.

모든 순간이 내게 말을 건넸고, 나는 글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글을 써 내려가며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내던 초능력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다만 관심 있게 보지 않았을 뿐,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끝없이 해야 할 진짜 일이다."
-메리 올리버(Mary Oliver)-



디테일이 건네는 말 브런치 북을 마치려 합니다. 별거 아닌 것들에서 별거를 좀 찾아보려 노력 덕분에 제 마음뿐 아니라 주변 분들에게도 많은 애정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댓글과 좋아요로 많은 응원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금 쉬다가 새로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퇴사 후 제조업 디자이너에서 유통업 경영을 하게 된 좌충우돌 도전기에 대한 글인데 새로운 글들도 관심 있게 봐주실 거죠?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겠습니다. 시원하고 건강한 여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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