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한 통'에서 시작된 세계안보
어!? 내가 브라질을 갔다가 프랑스로 갔네?
남편은 아침 일찍부터 무슨 잠꼬대를 하는 거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봤다.
며칠 전 누군가 내 계정으로 브라질에서 네이버 로그인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해외로그인 차단설정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에서 또 로그인시도 알림이 온 거다. 이거 정말 큰일이다 싶어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아이디가 해킹돼서 주소록에 있는지인 들에게 돈 좀 빌려달라는 문자가 가는 건 아닐까?', '내 아이디로 이상한 게시물을 올리려고 하는 건 아닐까?' 수많은 걱정들이 스쳐갔다. 지인들에게 아직 연락이 안 온 걸로 봐서는 위급상황은 아닌 듯했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 급히 비밀번호를 바꾸고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문자 한 통이 왔다."00 카드 결제 7,500원 쿠팡" 카드결제 문자였다. 내가 결제를 했다면 이상할 게 없는 문자였지만, 문제는 내가 결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음~~!" 나는 오징어게임 속 기훈처럼 소리 질렀다! 가족들은 영문을 모른 채 나를 향해 눈을 돌렸다. "모두 동작 그만, 혹시 지금 쿠팡에서 물건 산 사람 있어?" 우리 집 식구들, 나 포함 누구도 쿠팡에서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너무 놀라 급히 주문 내역을 확인했지만, 오늘 날짜로는 어떤 거래도 없었다. 오징어게임에서 새로운 게임룰이 공개될 때보다 더 오싹한 순간이었다. 나는 덜덜덜 손을 떨며 급하게 쿠팡에 전화를 했다.
이른 시간으로 운영시간이 아니라며 ARS로 넘어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상담 전화받는 속도는 배송만큼이나 빨랐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쿠팡의 CS 서비스에 감탄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쿠팡 쪽에서도 오늘 날짜 주문한 내역이 없다고 했다. 이건 정말 심각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어 상담사에게 말을 있어갔다.
"아무래도 제가 해킹을 당한 거 같아요. 제가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이 결제됐다고 나오고, 심지어 판매플랫폼 쪽에서도 주문내역이 확인이 안 된다면 환불처리가 안된다는 말일 텐데, 지금 당장은 칠천오백 원이지만 칠만오천 원이 되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요? 이거 해킹된 거라면 쿠팡 측에서도 굉장히 큰 문제일 텐데요.." 해킹이라는 말과 거시적인 문제를 들먹이니 상담사도 내심 걱정이 됐는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 아 무래도.. 카드사에 문의를 빨리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내 계정으로 로그인 시도가 있었던 터라, 예민한 상태로 카드사에 전화를 걸었다. 카드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어디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니 이건 범국가적 측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마침 아침신문 메인 헤드라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스라엘 사이버돔 구축·日 방어법 제정, 한국은 해커놀이터' 한국은 사이버 위협이 늘고 있지만, 법과 조직, 공조체계가 미비해 국가 차원의 실시간 대응이 어렵다며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사이버 안보 능력이 있었다는 기사글이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구나 라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7,500원의 정체는 쿠팡에서 구독 중이던 휴대폰 보험료였다. 카드 결제 문자를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바람에, 정작 쿠팡에서 온 알림은 놓치고 말았다. 매달 초 자동 결제되는 금액이라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건망증과 그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 덕분에, 브라질과 프링스를 거쳐 이스라엘까지 넘나들며 하루 종일 세계 곳곳의 보안 문제를 고민하는 뜻밖의 여정을 보냈다. 사소한 착각 하나로 엉뚱한 상상과 불필요한 걱정이 가득했던 하루였다. 다행히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더 온라인으로 촘촘히 연결되는 미래 나에게 보안에 좀 더 신경 써보라는 경고 같았다.
그리고 온갖 상상과 혼자만의 추리극이 허무하게 끝났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으며, 나는 조용히 쿠팡 알림 허용 버튼을 켜고, 자주 쓰는 앱들의 비밀번호를 모조리 바꿨다. 호들갑 끝에 카드를 정지시킨 덕분에 당분간은 강제 쇼핑 디톡스를 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다음엔 카드 결제 문자 하나에 세계 안보까지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