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은 연장선
지하철이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고, 플랫폼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마음은 열차 안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발은 마치 늪에 빠진 듯,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떨어졌다. 분명 눈앞엔 아직 문이 열려 있었고,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한 발만 내딛으면 되는 거리에서 문은 냉정하게 닫혀버렸다. 순간,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주 작은 타이밍의 차이가 전혀 다른 삶을 만들어내는 영화 속 장면처럼, 내 인생에도 눈앞에서 닫혀버린 문들이 있었다. 사소한 타이밍 차이로 놓쳐버린 일들,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았던 순간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듯 보이지만, 그땐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가고 싶던 회사의 지원일정을 착각해 지원서를 못 넣은 적도, 휴가 중 기차파업으로 가지 못한 밀라노도 아쉬웠다. 하지만 일정을 체크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채용 공고가 없는 회사에도 인재풀을 등록시키고 인사팀에 꾸준히 메일을 보냈고 덕분에 조건이 더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뒤 디자인 기획팀을 맡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글로벌 디자인페어 참관을 제안하는 일이었다. 세계 3대 디자인 페어를 비교하여 자료를 정리했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을 읽기 위해 꼭 필요한 일정이라는 기획서를 썼다. 마침 해외사업 비중을 높이려던 회사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그해 나는 밀라노 디자인페어를 참관했다. 그렇게 순조로운 회사생활이 이어지는 듯했다. 일은 능숙해졌고 연이은 프로젝트 성공과 높은 성과급도 빠른 승진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센가 반복되는 업무로 나 자신이 소모되는 듯한 했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전진했지만,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서있는 느낌이었다.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같은 목표와 꿈을 가진 동료들을 만나 함께 발전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반복되는 고민과 개인적인 여러 이유들로 퇴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혼자 여행을 떠났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사색하기 좋은 해남 땅끝마을로 떠났다. 그곳에서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며 시작과 끝, 끝과 시작은 둘로 나뉘는 게 아니라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퇴사했으니 새로운 걸 시작하자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아쉬웠던 것들을 채우며 이어가면 되겠다 결심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서울로 가는 열차에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한겨레 글쓰기 수업 개강' 평소 관심 있는 수업 알림을 신청해 놓은 덕이였다. 마치 내 생각을 읽어낸 것 같은 문자 타이밍에 '영화 트루먼 쇼 속 주인공처럼, 누군가 내 하루를 몰래 연출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 진동이 마치 누군가 주먹으로 내 몸을 세게 두드린 것처럼 심장이 쿵쾅댔다. 날 설레게 한건 글쓰기 실력을 높일 수 있다는 바람뿐 만은 아니었다. '나만 따라오면 다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듯한 강사의 눈빛은 잠시 잊고 지냈던 내 자신감을 고양시켰고,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수업을 들으며 수강생들과 각자의 글을 공유하다 보니 내적친밀감이 생겼다.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하게 그 사람이 걸어왔던 길을 잠시 같이 걷는 것 같았다. 수업에서 처음 만난 그들과 흩날리는 벚꽃길을 같이 걷고, 뜨거운 시장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기를 마주하고, 같이 제품 홍보활동을 하여 글 속에서 산책을 함께했다. 각자 다른 풍경을 보며 걸어왔지만, 글쓰기에 대한 간절함과 열정은 다르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어떻게 글을 쓰게 됐는지, 무슨 이야기를 쓰는지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20대 때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본 적 없었기에 문득 ‘내가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이었나?’ 하고 놀랐다. 종강 후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매주 모여 생각과 글을 나누고, 서로의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재직 중 그렇게 바라왔던 것처럼, 이제는 나만의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내 곁엔 그 길을 함께하며 끌어주는 동료들이 생겼다.
흘려보냈던 생각들이 차곡차곡 채워지며
눈앞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마치 내가 이 자리에 올 것을 알고,
하나씩 자리를 비워 둔 것처럼.
운이 좋아 어떤 자리에 닿는 순간이 분명하지만, 모든 일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믿고 싶진 않다. 내 결핍을 채운건 단순한 우연과 타이밍 만은 아니었다.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려 노력했다. 운명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처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운명이란 [움직일 運(운), 목숨 命(명) ] 움직이며 내 상황이나 목숨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실행하며 새로 쓰는 삶인 것이다. 운명처럼 다가왔던 일들은 결국 어떻게 움직일지 내가 결정한 일들이었다.
목적지에 빨리 가려하다 보면 아쉽고, 속상하고 미련이 남게 된다. 하지만 목적지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도착하게 돼있다.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고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일들이 오히려 내 몸과 마음을 더 단단하고 충만하게 만들어준다. 지하철 문이 눈앞에서 닫히는 순간, 나는 전혀 아쉽지 않다. 다음번 열차를 타야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장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