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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토 Sep 17. 2024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죄

삶이 제 것인지 아는 사람에게서만 스며나오는 그 아름다움

















오늘도 잠들지 못하고 한참이나 뒤척이고 있습니다. 여느 밤처럼 몸은 피로로 가라앉는데, 마음은 잡념으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눈을 감기 전 들여다봤던 SNS 속 이야기들이 나를 감싸며 뒤엉켜있습니다. 자주 들여다보는 한 인플러언서가 추천한 유명 전시회가 아른댑니다. 티켓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아이들에게 귀중한 경험이 될 거 같아 아무래도 예매를 해야겠습니다. 다른 유명 방송인이 소개한 육아서도 장바구니에 담아둬야지. 육아하는 모습을 보면 배울 점이 많아 그녀의 말에 신뢰가 갑니다. 올려놓은 문구들도 참 와 닿아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 캡처까지 해둡니다. 맞다, 카드비가 얼마가 나왔더라. 경조사들도 많아 이번 달도 마이너스입니다. 비상금 통장도 바닥인 거 같은데, 애들 학습지를 하나 줄여야 하나, 치과 치료를 다음 달로 미뤄야 하나, 머리가 지끈해집니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고등학교 동창이 카페를 차려 대박이 났다고 하네요. 머 하고 사나 종종 궁금했는데, 반가우면서도 어느 한구석 씁쓸해지는 이 마음이 익숙합니다. 결혼 전 다녔던 회사 후배는 늘 퇴사한다고 투덜거리더니 최근에 승진했다는 소식을 올려놓았습니다. 어깨를 주물러보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봅니다. 몇 달째 책만 꺼내놓고 있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이번에는 기필코 따야지. 그러다 나도 다른 공부를 해야 하나, 파트타임이라도 일을 찾아봐야 하나 이내 심란해집니다.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까마득해집니다. 뒤척이는 내 몸이 내는 소음이 꼭 시끄러운 내 속 같습니다.

이러다 또 밤을 새우겠지요.          







아름다움을 본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모름지기 설레고, 부럽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갖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다. 다행으로 나는 시기나 하는 작은 그릇이 아니다. 부러우면 본받을 줄 또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바보같이 SNS만 들여다보는 중독자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했습니다. 고급 정보도 얻고 거기서 자극을 받아 도전도 하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SNS의 순기능이 아닌가. 안 하던 운동을 하고, 추천해주는 책을 읽고, 값비싼 영양제도 주문해보고,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박물관도 갔습니다.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SNS 속 사람들처럼, 내 삶도 조금씩 어느 한구석 빛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어딘가 미묘하게 비틀린 기분이 곰팡이처럼 번져갔습니다. 있어 보이고 폼 나 보인다고 믿었는데, 이상하게 메말라가고 비틀어지는 느낌이 짙어졌습니다.

공동구매로 구매한 화장품들과 옷들로 요즘 달라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을 만큼 나는 점점 예뻐지고 있었습니다. 겉뿐만 아니라, 선착순 한정판매로 구매한 영양제들로 이너뷰티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한 연예인이 한다는 플라잉 요가도 꾸준히 다니면서 건강에도 신경을 부쩍 쓰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좋다는 책들도 열심히 찾아 읽으면서 소양도 쌓고 마음공부도 하려 부단히 노력합니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요.


이토록 나는 분명히 애썼는데, 나아가고 있었는데,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머가 어디서 잘못된 걸까요. 아름다움을 보지도 말았어야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나의 것이 아닌 아름다움은 욕심내면 안 되는 것일까요.

 잠 못 이루는 밤 들 만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그런데, 실은 내심 알고 있었습니다. 살아오는 내내 이런 불편한 느낌을 안고 있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내 삶은 어설프고, 아등바등 어딘가 짠 땀내가 났습니다. 1등은 영원히 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명문대를 꿈꿨지만 지방국립대밖에 가지 못했고, 테헤란로를 열망했지만 근처 작은 사무실이 나의 한계였습니다. 나와 비슷한 환경의 비슷한 수준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깨달았기에 고만고만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몇 해 전, 어느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결혼식에서 나의 민낯을 마주했습니다. ‘나보다 공부를 못하던 친구였는데, 비서학과를 가면서 외모에만 신경 쓰면서 맞선을 그렇게 보더니, 의사를 만나 결혼까지 성공한 인생’ 앞의 문장이 얼마나 치졸한지 알지만, 부끄럽게도 그게 나의 명확한 감정이었다. 아닌 척, 다른 척 심지어 잘난 척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나의 바닥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억하는 평생, 누군가를 은밀하게 샘 내하고, 교묘하게 시기했습니다. 삶이 제 것인지 아는 사람에게서만 스며나오는 그 아름다움을, 나는 본능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에만 급급한 삶을 살아가는 내게 없는 그 아름다움을 말이지요. 강남의 넓은 평수 아파트와 고급 외제 차, 입이 벌어지는 혼수 뒷이야기들로 테이블이 뜨거워지는 만큼, 나는 나의 얼굴이 뜨거워져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며, 그동안 내세웠던 나의 ‘체’들이 한꺼번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명문대에 갈만한 실력이 안 됐으면서, 장학금 때문에 지방국립대를 간다는 겸손을 떨었습니다. 대기업에 줄줄이 낙방했으면서 듣보잡 신문사의 기자를 있어 보이는 핑계로 삼았습니다. 조건도 보고 싶었지만, 용기도 자신도 없어 오랜 인연을 결혼 상대로 선택했습니다.

하, 적어도 친구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욕심에 아주 충실했습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삶의 진짜 모습을.          






새벽 2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왜 갑자기 그 결혼식이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날 이후 열등감에 휩쓸려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나의 욕망을 인정했고, 나의 현실을 파악했고, 나의 미래를 계획했습니다. 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도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어느 한 귀퉁이, 공허함은 늘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얗게 밤을 새우고, 어설프게 졸고 일어나보니,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소꿉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입니다.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핸드폰 메신저와 SNS부터 확인합니다. 봐야 할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젠 무서운 중독이 되었습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아침밥을 간단하게 준비합니다, 종일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니, 놀이터에나 가봐야지.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당연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며 씻기고 밥을 먹였습니다. 옷을 갈아입히고 문밖으로 나오는데도 식은땀이 한 바가지입니다.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얼굴에 짜증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낯익은 모습입니다.

그래도 놀이터 공원으로 나오니 포근하고 산뜻한 봄 내음에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막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과 청명한 푸르름에 오랜만에 머리가 상쾌해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도 덩달아 여기저기 잎사귀와 꽃을 만져보며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아이들을 뒤따르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나에게 달려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다며 건넵니다. 자세히 보니 세 잎 클로버와 다른 한 잎을 붙여 네 잎으로 만든 것입니다. 아이가 한 행동이 너무 재밌어 물어보니, 엄마가 행복해지라고 네 잎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죄.

나는 내 것이 아닌 아름다움을 본 죄, 욕심을 낸 죄가 나의 죄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 놀이와 장난, 어슬렁거리는 산책, 남편과의 객쩍은 농담, 소란스러운 저녁 식사, 정신없는 아침 시간, 예상치 못한 기분 좋은 날씨, 따뜻한 차 한잔, 오랜 친구와의 수다, 급여 날의 외식, 투덕거리는 엄마와 동생 등등, 이 소소하기 짝이 없는 그저 그런, 그렇지만 나밖에 가질 수 없는, 나만이 가진 귀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죄. 그것이 바로 내가 지은 가장 큰 죄였던 것입니다.     



슬프게도, 나는 아마도 나의 이 죄를 금세 또 자주 잊어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차곡차곡 나아가고 자라나면 됩니다. 나도 인생이 제 것인 줄 아는 사람처럼 반짝반짝 빛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단히 나를 끌고 가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하하, 그런데 기분 좋게 산책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그제 밤에 sns를 보며 주문한 택배가 아이들 키만큼 쌓여있습니다. 반품도 안 된다 했는데, 어떡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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