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1이 지워졌는데도 답장 없는 대화창이, 얼마 전 직장 동료 혹은 친구에서 들었던 찝찝한 말 한마디가, 오래전 내가 저지른 나만 기억하는 사소한 실수들이 온통 내 머릿속에서 뒤엉켜 오늘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으신가요?
이렇게 늘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혼잣말을 하거나 한숨을 내쉬다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사람. 이는 사실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태생이 예민한 탓인지 아니면 애정 결핍이나 성장 과정에서의 트라우마 탓인지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진정한 내 편을 가졌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특별하게 불우한 환경이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어느 한구석이 늘 불안하고 불행했습니다. 어떤 관계에서도 자신을 가지지 못하고 휘둘리기 일쑤였고요. 이모티콘만 있는 문자 하나에, 누군가의 의미 없는 눈빛에, 상대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말 한마디로, 정말이지 ‘사랑 못 받은 똥강아지’마냥, 언제나 안절부절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어떤 상황에서도 단단하고 단정한 사람이 꿈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과 괴리감이 더 커질수록 꿈은 더 강렬해지는 법이지요. 간절하게 수많은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뇌과학 서적들을 읽고 관련 강의들을 찾아 들었습니다. 이론들을 공부하고 실전 훈련들도 연습했습니다. 과연, 저는 제가 꿈꾸는, 현실의 저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요?
죄송한 이야기지만, ‘나는 이렇게 해냈다’라는 성공담을 기대하셨다면, 저의 글은 이제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안타깝게도 책 한 권이나 이론 하나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경우는 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매번 기대하다 보니 좌절과 실망 그리고 뒤이은 슬픔과 분노만이 쌓여갔습니다. 결과론적으로만 보자면 저는 실패한 셈인 거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을 정도로, 아주 슬며시 저 자신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상처에 맷집이 생겼다고 할까요, 굳은살이 돋아났다 할까요. 나에게 노력과 시간의 힘이 조용히 단단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조금의 힘으로 수없이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 또다시 꾸역꾸역 발을 내디디고 걸어온 제 모습이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몫의 고통은 그 누구의 공감이나 이해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롯이 나 자신만의 시간과 인내로만 감내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 그거 하나만으로 저는 충분했습니다.
그 아주, 아주 조금의 변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한 과정을 기록한 것이 바로 제 글들입니다.
내 편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 내 편을 가져보고 싶어서, 내 편 좀 되어달라고 이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 형편없는 기록이 누군가에게 한점 위로가 되기를 혹 그렇게 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순간이라도 내 편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