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보여줄 수 있나요?
내 편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유독 많은 해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육과정에서 나아가 성장 과정에서 수용 받아 본 적이 없어, 자신의 존재 자체에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탓입니다.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유독 자신의 단점이 들춰지는 것에 두려움을 크게 느끼기 때문에 항상 해골들을 꼭꼭 감춰놓고 살게 됩니다. 바로 저의 이야기이지요.
돌아보면,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기 시작한 날부터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큰 고비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넘어야 한다는 목표로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서 넘어가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조용하지만 잔인했던 싸움들.
탐색하고, 재고, 실망하고, 수치스럽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매달리고 아니면 시달리고. 그런 수많은 감정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끝없이 유지해야 하는 긴장 상태의 연속들은 나를 싸움꾼으로 만들었습니다. 갑옷을 단단히 입고 칼을 꼭 움켜쥐고서 잠을 잘 때조차 사방을 살피고, 언제 누가 나를 공격할지 몰라 매 순간이 전투태세가 되었던 것이지요.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냐고요? 그냥 무시하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쉽게 말합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기억조차 안 나는 정말이지 무의미한 관계이고 전투라는 걸요.
그런데요, 그 속에 있으면요, 그런 말 한마디가, 차가운 눈빛이, 한숨 소리가, 몇 초의 침묵이, 문자 한 통이 마치 거미줄처럼 나를 옭아매서 빠져나오려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지독하게 엉키게 만들었습니다.
최악은, 이런 소리 없는 전쟁 속에 오래 있다 보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남을 탓하게 돼버립니다. 슬프게도 그렇게 안 하면 숨을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은 쉬는데 영혼은 점점 메말라갔습니다. 남을 탓하는 게 한시도 좋은 약이 아니란 걸 알지만, 계속 바르다가 덧나고 곪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이 아주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가는 걸 지켜봤습니다.
아주 천천히, 투명하게 모든 찰나를 느끼면서요.
그리고 ‘어느 집에나 옷장 속에 해골이 있다’라는 말을 최고급 초콜릿처럼 꺼내먹으며 살았습니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아픔이나 비밀이 있다는 말이, 나만 이렇게 형편없이 사는 것은 아니라고, 다른 사람도 다 똑같다고 위로해 주는 거 같아서 말이지요.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인 것보다, 나만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인 것이 훨씬 슬프고 비참했습니다. 수치스러운 자신과 지나온 흔적, 절대 밝히고 싶지 않은 결핍과 상처 등등 나와 같은 해골들이 상대에게도 있을 거라는 달콤함이 내 신경을 타고 올라가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초콜릿을 먹으며 다가올 싸움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질 거 같으면 상대의 해골을 몰래 찾아내어 무기로 삼는 것이지요. ‘당신은 이렇게나 흉측한 해골들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내가 이긴 거야.’ 나는 마치 해골이 하나도 없는 척하면서 말입니다. 하, 듣기만 해도 얼마나 고역이고 지겨운 싸움인지 아시겠나요.
그렇게 매일 내 옷장 속 해골들을 누가 알게 될까 전전긍긍 애쓰며 살다 문득 발견했습니다. 해골을 감추려고 벌인 싸움으로, 더 많은 해골이 생겨버려 내 옷장이 터질 지경이 되었다는 걸 말입니다. ‘옷장이 터져버리면 사람들이 모두 내 해골들을 보고 말 거에요. 그러면 나는 정말 더는 버틸 수 없을 거예요.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한시라도 빨리 해골들을 정리해야 해요.’
나는 거미줄과 먼지가 쌓인 해골을 하나하나 꺼내 닦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해골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수치스럽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다 해골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들여다보고 닦고 정리하면서 아주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이까짓 해골이 뭐라고. 그 긴 시간 이걸 감추고 또 감추려다 더 큰 것을 만들어내는 멍청한 싸움을 수없이 반복했을까. 그 결과, 내가 하나의 거대한 해골이 된 것은 아닐까. 말입니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 해골들을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여전히 보여주기 싫은 해골이 몇 있거든요. 하지만 이젠 적어도 굳이 감추려고 치러야 하는 조용한 싸움은 천천히, 조금씩 멈춰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제야 나를 감추기 급급했던 가짜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에 맞서는 진짜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맞아요. 전 너무 많은 해골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해골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는 나의 해골을 부끄러워하지도, 다른 사람의 해골을 들추지도 말아요. 그것부터 시작해봅시다. 자, 여기 내 해골들이 있습니다. 맘껏 구경해 보세요.
참, 딱하게도 이런 마음을 늘 유지하지는 못합니다.
비뚤어져 해골을 남에게 집어던질 때도 있고, 의기소침해져 옷장안에 숨어버릴 때도 있지요.
이 모두 저의 모습들입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내편이, 나 자신임을 이제서야 깨달았지만 그 길은 여전히 요원하고 험난합니다.
이런 엉망진창인 내가, 과연 진정한 내 편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당신의 해골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