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영혼을 위한 치킨 수프 좀 먹어봤습니다만...(자존감)
부모부터 가족, 친구, 동료 누구 하나 내 편이 없고, 이미 망쳐버린 것 같은 인생.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싶은 당신은 어떻게든 버텨 보려, 베스트셀러 책들을 주문해보고, 너튜브 강의를 찾아 보다, 어느 순간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내 ‘낮은 자존감’ 탓이구나.”
그러고 이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오는 방법들은 모두 시도해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남과 비교하지 않기, 성취감 끌어올리기, 낮은 자존감의 원인을 찾기 등등 수백 가지는 더 될 방법 들을 전부 말이지요. 그러나 종국에 가서 항상 직면하게 됩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현실을 말입니다.
아마, 적지 않은 분들이 이런 비슷한 과정을 지나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두 생각합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나의 모든 문제가 ‘낮은 자존감’ 탓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고부터 근 20여 년간 들여다본 자료 대부분이 하나같이 관계나 삶에서 문제를 겪는 근본적인 원인이 낮은 자존감이라며 갖은 증거와 논리들을 들이밀었던 것이죠.
처음에는 ‘영혼을 위한 치킨 수프’부터 시작했습니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일화들로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마음을 달래어보았습니다. 잠시 속은 따뜻해졌습니다. 이어 실제 임상 사례들을 근거로 설득을 하는 심리학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많은 힘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낮은 자존감이 올라가지는 않았습니다. 뇌과학이나 양자물리학 같은 명확한 과학 이론들이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 찬 나의 내면을 가라앉히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연륜은 얻을 수 있었지만, 자존감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기질로 타고난 혹은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존감이 바뀌는 기적 따위는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예민하고 불안한 어릴 때 모습 그대로인 것이지요.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그대로인데, 이것을 바라보는 나의 사고나 태도에는 꽤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전처럼 자존감에 집착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기로 너새이얼 브랜든이라는 학자가 1969년 처음으로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한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 정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든가 ‘이 세상은 내가 만든다’ 같은 유아적인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삶의 기본적인 도전에 대처하고 자신을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서 인식하는 어른스러운 자질에 가까운 것인 거죠. 당시 자존감을 연구했던 학자들은 자존감을 성공에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이후 ‘자존감’ 즉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 유행처럼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높은 자존감만이 성공한 사람과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는 식의 이론들이 지나치게 확산하면서 우리는 지금처럼 자존감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건강한 자존감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삶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무수한 요소들이 얽혀있는데, 정말 높은 자존감만이 모든 해답일까요? 높은 자존감이 다 좋은 걸까요?
1989년에 8개국 학생들이 참가한 수학경시대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미국 학생들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고, 한국 학생들은 가장 높은 성적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자신이 수학을 얼마나 잘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자, 예상과 달리 미국 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준 반면, 한국 학생들이 가장 낮은 점수를 줬습니다. 수학에 대한 자존감이 수학에 대한 성취도와 역관계를 이루는 아이러니가 나타난 이 사례는, 높은 자부심이 현실을 정확히 볼 수 없게 한다는 예로 종종 인용됩니다. 높은 자부심이 자만이나 나태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는 자존감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자존감이 높으면 좋고, 자존감이 낮으면 나쁘다는 사고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신중하다, 겸손하다, 잘 배려한다, 공감 능력이 높다, 환경과 변화에 쉽게 적응한다, 준비성이 있다. 대비를 잘한다 등등 지금 당장 검색만 해봐도 낮은 자존감의 장점을 수십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반면 오만하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과신한다, 자기중심적이다. 등등 높은 자존감의 단점도 아주 많습니다. (<자존감이라는 독>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다시 말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자존감이란 없으며, 동전의 앞뒤처럼 저마다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항상 높고 반대로 낮은 사람은 항상 낮다고 오해를 하며, 쉽게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론을 한번 엿볼까요?
브라운(Brown)과 마셜(Marshall)이란 학자들은 자존감을 전반적 자존감과 영역 특수적 자존감 그리고 상태 자존감으로 나누었습니다. 전반전 자존감은 자신이 살아온 삶 전반에 대한 평가를 의미하며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정도를, 영역 특수적 자존감은 자신의 능력이나 특성이 드러나는 삶의 영역에 따라 자신의 자존감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을, 상태 자존감은 일상의 일들로 달라지는 자기 가치감을 뜻합니다. 즉, 노래를 잘해서 음악 쪽으로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라던가, 상사의 격려 한마디로 그날 하루는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식으로 자존감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절대적이 아니며 언제 어디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늘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높은 자존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누군가의 한마디에 넘어지고 깨지며,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높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존감을 끌어안고 묵묵히 정성스럽게 살아간다.
그러니, 나 자신을 ‘낮은 자존감’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행동을 우리는 이제 멈춰야 합니다.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할 수 없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고개를 돌려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쉬워 보이지만 이 힘든 일을 우리는 쓰러져있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끌어당기며 해내야 합니다. 그것도 매시 매분 어쩌면 평생을 말이지요.
행복이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로 오는 것처럼 자존감도 과거 나의 삶의 결과입니다. 억지로 공부를 하고 훈련을 한다고 당장 올라가는 것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현재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자존감이라는 것입니다. 뻔한 이야기라 정말로 하기 싫지만, 지금 당장 내가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도 안 되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나의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자라있는 것, 그것이 ‘자존감’이라고 저 또한 매일매일 잊지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자존감을 믿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 그리고 여기의 힘과 자신을 믿어보세요.
아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언젠가 증명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옳다는 것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