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Feb 13. 2024

딸이 키우는 엄마

 

"밥맛이 꿀 맛이다"

4살 된 딸아이가 굴비와 함께 밥 한 숟가락을 먹고 나더니 한 말이다.

명절에 시댁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아침밥을 먹는 중이었다. 어른들께서는 모두 기특하다며 웃으며 하시는 말,

"OO야,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어?"

"엄마가 책을 읽어 주셨는데 거기서 나왔어요"

 

큰 딸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천방지축인 아이였다. 

우리 집도 아닌데 벽지에 온통 낙서를 해버리는 통에 아예 방마다 전지를 사 붙여 주었다. 그리고 밀가루와 물감을 같이 반죽하여 바닥에 전지를 깔아 놓고 손과 발로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게 해 주었고 요리를 할 때면 옆에 와서 같이 요리하겠다고 졸라 대는 날은 감자를 절반 깎아서 도장 찍기를 하게 했다. 

 



그런 아이가 벌써 30대 성인이 되었다.

애들과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엄만 모르지? 언니가 나 어릴 때 자신이 마법사라고 전자레인지 위에서 뛰어내렸잖아. 

그리곤 날지 못하니까 자신이 세상에 너무 오래 살아서 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했어."

어이가 없어 두 딸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발에 깁스를 하고도 바닷가에서 놀았던 아이였으니 할 말을 다했다.

그런 큰 딸이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경찰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공무원?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데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험 때만 되면 장염과 위염, 독감을 번갈아 가며 몸은 아팠고 끝내는 탈모까지 생겼다. 결과는 기출문제를 풀었던 때보다 당연히 좋지 않게 나왔다. 

눈앞에 풍선에 메 달린 실이 보이는데 잡힐 듯하여 손을 뻗어 보지만 자꾸 멀어져 가듯 합격이라는 문턱을 넘기지 못했다.

 

그 무렵, 유튜브 스터디 영상이 붐이었던 시기다.

공부가 되지 않을 땐 영상을 보는 것이다.

"너도 해봐~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아냐, 그럴 시간이 어딨어. 공부해야지"

하던 아이가 영상 4개를 올리더니 천명의 구독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1년이 되기도 전에 2만 명을 넘기는 것이다. 만 명을 넘기는 순간부터 악플이 달리기 시작하고 2만 명이 될 때 딸은 심리적으로 무척 힘들어했다.

팔로우숫자가 늘어갈수록 영상 하나를 올리는데 두려워하고 있었다. 

끝내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때의 영상을 만들었던 경험이 지금의 마케터가 되는 길이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상 한 두 개 올렸을 땐 그냥 올렸지만 세 번째 영상을 올리기 전에는 인기 유튜버들의 영상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전략을 짰던 것이었다. 

 

마케터인 딸은 내가 쓴 글을 피드백 주는 일은 드물다. 

브런치북에 연재하고 있는 글이 이틀 만에 8000회 조회수를 넘기고 기쁜 나머지 딸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딸이 퇴근을 하자마자 엄마 글 한번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니 내가 읽어줬다.

"오, 괜찮네. 엄마 그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라는 말을 하는 순간, 

신나서 또 다른 글을 읽어 주고 싶었다.

또 하나 읽어줘도 돼? 하면서 브런치 북에 올린 글 들 중 몇 개를 읽어주었더니 이건 넘 일기 같지 않아? 

이건 머 소설인지 수필인지 모르겠는데? 냉정한 피드백이다.

“칫, 처음 엄마가 읽어 준 글이 8000회가 넘었어

제목을 뭐라고 했는데? 딸이 질문을 해왔다. 

딸은 자신이 영상을 아무리 잘 찍고 편집을 하더라도 클릭을 불러오는 제목이 아니면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쓰면서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 어떤 글을 클릭 하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해보았고 브런치스토리의 독자들은 어떤 글에 공감을 하는지 분석해 나갔다.

 다음 연재 글은 제목을 짓는데 신경을 좀 써 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기획한 글과 함께 읽히는 글이 되게 하려는 노력을 했던 이야기를 하며 글을 연재할 때마다 할 수는 없지만 

계획했던 글이 읽히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 글을 연재할 때마다 분석하고 전략을 세워야 해. 그게 엄마가 항상 말하는 유한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야. 잘 크고 있네.ㅎㅎ


나의 급했던 성격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를 키우며 여유를 갖는 마음이 생겼고, 천방지축인 아이는 무작정 화를 내며 키워서는 안 된다는 지혜를 갖게 했다.

지금은 세상을 읽는 문해력과 혜안을 가지고 있는 큰 애가 나를 키우고 있다.

이전 08화 노안에 물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