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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Feb 06. 2024

노안에 물들다

어느 날 갑자기 큰애가 깜짝 놀라면서

"엄마, 왜 핸드폰을 멀리하고 봐?"

"어? 그래야 잘 보이는데?"

"뭐야? 엄마 노안이야?"

"헉. 아냐.. 그런가?"


나도 모르는 사이 핸드폰에 있는 작은 글자를 멀리해 읽는 모습을 보고

큰애가 명명한 노안이라는 단어가 물질처럼 손에 잡히는 순간이었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한해한해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이 들어간다는 걸 실감을 하지 못했다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콘택트 렌즈를 끼고 외출을 하면 카톡이나 문자 확인을 하지 않는다.

글씨가 작아 보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답장을 하면 오타가 빈번하여

외출할 때는 핸드폰을 들여 다 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글씨를 보려면 인상을 찌푸리게 되고 오타가 있어도 번거로운 나머지

수정하기도 귀찮아진다.

급한 일이 있으면 전화하겠지 생각해 버린다.


"엄마, 왜 카톡을 확인 안 해?"

"잘 안 보이잖아."

"그럼 폰트사이즈를 키우면 되지?"

싫어...

"그럼 돋보기를 사든가"

그것도 싫었다.

핸드폰에 폰트를 키우면 나이 들어 보이고 돋보기를 쓰는 건 내가 늙어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 같아서 마뜩잖았다.


어느 날은 딸과 복싱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딸이 쓰던 안경이 잘 보이지 않는 다며 안경집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딸이 시력검사를 하는 동안 안경사에게 노안조정 렌즈를 끼고 있는데도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돋보기를 써 보시라고 권한다.

한 번 써보는 건데 하며 써 보았다.

어떡하나. 흐릿했던 글씨가 선명하게 잘 보였다.

시력검사를 하고 나오는 딸에게

"돋보기 같아 보여?"라고 묻고

최대한 돋보기처럼 보이지 않는 걸로 골랐다.


노안이라는 판정을 받고 몇 년이 지나고서야 돋보기를 샀다.

돋보기를 쓰면 뚜렷하게 잘 보임을 인정하고 말았다.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세월이 가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당연한 일이고 사춘기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의 변화가 오듯 나도 몸과 마음의 변화가 온다는 걸 이젠 인정하고 돋보기를 쓰는 나를 더 아껴줘야겠다.

그래도 아직은 렌즈 착용을 하지 않으면 책은 읽을 수 있다는 위안을 삼고 좀 더

눈 건강뿐 아니라 몸을 사랑하고 챙겨 줘야겠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각양각색의 어지러웠던 세상을 단색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넋을 잃고 바라본다.

아름다운 석양이 물들어가듯 나 또한 나에게 어울리는색과 품위 있는 무늬를 그리며 노안에 물들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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