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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Feb 20. 2024

괜찮아, 좀 쉬어 가도 돼

찬란한 여름날의 데이트

아이는 바지 밑단을 걷어 올리고 바닷물에 살짝 발을 담근다. 밀려오는 파도는 작은 애의 다리를 밀치고 도망간다.

“아! 차가워” 하고 뛰어오르며 환하게 어린아이 마냥 웃는 얼굴이 여름 가느다란 햇살에 찬란하게 빛난다. 나는 딸의 웃는 입가에 시선이 머문다.

저 아이가 밝게 웃었던 적이 언제 였을까 ?

고등학교 3년내내 반장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아 했다.

리더역할을 하기 싫어했던 작은애의 생각과는 다르게 친구들에겐 인기가 많았다.

수학여행 가서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면서 긴 머리를 휘달리며 환하게 웃고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작은 딸은 아주 모범적인 아이였다.

규격봉투 같은 사람이 있을까? 한치의 오차도 수용할 수 없을 거 같은 반듯한 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엄마, 내가 하교할 시간이 되면 집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원어민 영어 학원을 다니던 딸아이는 영어를 듣는 귀는 빨리 트였지만 문법은 약했다

학원에서 숙제를 내주면 완벽하게 해 가야하는 성격인지라,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땐 도와 주어야한다. 그런데 엄마는 옆에 없고 학원 갈 시간이 다가와 화가 났던 것이다.

어느 날은 미술학원에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가야 하는데 내가 잊어버리고 사 놓지를 못했다. 언니 크레파스를 가지고 가 라는 데 싫다며 학원을 가지 않았다.

딸은 자신이 계획한 일이 틀어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도 엄마가 내준 숙제를 해야 한다며 친구들은 거실에서 놀게 하고

본인은 자신의 방에 가서 그날 내가 내준 공부량을 다하고 놀았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친구들보다 먼저 금융관련 공사에 합격을 하고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꿈을 이루어 낸 듯했다. 모범적이고 반듯한 아이라 공무원이나 공직에서 일을 하면 어울릴 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3년동안 직장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끝내 모두가 부러워하던 직장을 퇴직하고 호주에 있는 퍼스라는 작은 도시로 홀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1년후, 입국을 하자 마자 전세계는 펜데믹으로 외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매일 같이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 하는 듯하더니

“엄마, 나 출판사에서 소설 계약하자고 했어”

소설? 소설이라니 창의성 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거 같았던 아이가 소설을 썼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첫 웹소설을 출간했다.

두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출판사와 계약을 앞두고 마무리만 남은 상황이었을 때다.

딸은 주말에도 쉬지 않고 글만 썼다. 새벽엔 글을 쓰며 잠을 못 이루고 아침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아 날을 새는 날이 빈번해졌다.

 결국, 딸에게 우울증이 왔다. 아니 우울증상이 있었는데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계속 글만 쓰고 앞만 달린 것이다. 글을 쓰지 못하는 나날들을 보내며 딸은 자신이 글쓰기 외에 좋아하는 일을 무엇인지 찾아 헤메었다. 그림 그리기, 도예, 피아노, 복싱, 꽃꽂이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애써서 했다. 하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가장 좋아했던 미드도 보지 않고 책도 우울증약의 후유증으로 집중이 되지 않아 읽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어느 날 저녁, 가만히 작은애의 방문을 열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의 어깨를 안아주며 “괜찮아, 좀 쉬어 가도 돼” 한마디 했더니 눈물을 쏟아낸다.

힘들어도 참아내는 아이, 완벽하게 해내려 하는 아이가 무너졌다.

울고 있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나의 시선은 책장 위에 직장생활로 힘들어 할 때 나와 함께 살사 동호회에서 춤을 추며 즐겼던 작은애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흰 블라우스를 입고 찰랑거리는 긴 머리와 얼굴의 땀으로 젖은 앞머리는 빛나고 있다. 살사 기본동작인 베이직에 맞춰 턴 하는 모습을 순간 포착 한 사진이다.

작은애의 웃음을 다시 찾아줘야 했다.

“이번 주말에 엄마 랑 바닷가 가자”


해변가에 밀려왔다 가는 파도처럼 살아가는 데도 문제 하나 해결했다 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밀려온다. 하지만 나와 딸에게 밀려왔던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거친 파도를 끌어안고 있는 시원한 여름 바다처럼 큰 그릇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윤슬이 아름다운 여름 바다를 뒤로 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모래사장에 파라솔을 펴고 돗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을 쐬지 못하는 나에게 여름 바다의 바람은 시원하다. 밀려오는 파도에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는 딸아이 머리 위로는 갈매기가 함께 웃고 있다.

“엄마도 이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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