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Jan 23. 2024

행복을 초대하는 시간

저녁형 인간에서 새벽형으로 바뀌다.


새벽, 고요한 시간을 좋아한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 된다. 일어나자 마자 스탠드에 불을 밝히고 부엌으로 발길을 옮긴다.

찬공기가 콧등을 스쳐 지나간다.

흰색 주전자에 또르르 정수물을 120ml를 세번 따른다.

포트에서 물이 끓어오를 동안 원두 분쇄기에 원두를 넣어 갈아낸다.

내가 좋아하는 컵 위에 도자기 드리퍼를 올리고 종이필터를 깔아 놓는다.

끓인 물은 주둥이가 가늘고 긴 주전자에 담아 책을 읽는 책상에 도자기 드리퍼를 올린 컵과 함께 가지고 온다.


주둥이가 긴 주전자를 손에 들고 드리퍼 위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물을 부어준다.

두 바퀴정도 세번 돌리면 내가 마시는 하루 분량의 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갈아 놓은 원두는 따듯한 물에 몸을 자연스레 맡기며 또르르 흐르는 물에 향을 더해주고 청아한 소리까지 선사한다.

커피물이 떨어지는 순간 내 방안은 예가체프 향으로 가득해진다.

책을 읽는 시간은 항상 커피와 함께 한다.

새벽을 깨우기 위한 하나의 리추얼이 되어 자리 잡아가고 있다 .


바로 내려서 마시는 따듯한 커피는 내 몸을 온화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식어버린 커피 또한 담백하고 맛있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네가 좋아할 만한 카페가 있어”

베프가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한다.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북 카페였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커피향은 나의 온몸을 자극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건 책이 가득한 책장들이었다.

커피 쿠폰으로 책은 대여할 수도 있었다.

친구와 함께 앉은 자리는 적벽돌로 만들어진 벽난로 앞 창가 자리였다.

친구는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한다.

사장님께서 직접 도자기 드리퍼와 멋들어진 주전자를 가지고 왔다.

주전자를 들고 드리퍼에 물을 붓는 사장님의 손은 지치지 않는 발레리나의 춤을 보는 듯했다.

우아한 손놀림으로 만들어진 커피는 당연히 나와 친구의 대화를 품격 있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커피, 책 이것들 만으로도 행복한 날이었다.

그날의 커피가 핸드드립이 아니었어도 분위기와 베프로 인해 최고의 커피맛 이었을 것이다.


나의 방과 내가 내리는 커피 그리고 도자기 드리퍼를 갖기 까지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글을 쓰는 이시간 바흐의 골드베르크가 흐르고 있다.

새벽시간, 온전히 내가 운영하는 시간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고 행복을 초대하는 시간이 된다.

이전 05화 안경 좀 벗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