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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Mar 02. 2024

글쓰기는 타임캡슐이다.

2종 스틱면허 따는 날

그날은 운전면허 주행 재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초조한 마음으로 베란다 난간에서 주차장에 놓인 차들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난간 위에 올려놓은 손등을 다정하게 쓰다듬는 햇살의 위로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뾰로통 해진 입을 내밀고 기다란 한숨을 내뱉는 순간, 때마침 차량 한 대가 주차를 하기 위해 서서히 들어왔다. 양쪽에 주차된 차량 사이로 운전자는 천천히 후진을 하며 주차 중이었다. 내 눈은 현미경 렌즈를 끼어 놓은 듯 운전자의 핸들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동공은 한치의 흔들림이 없다. 어느 순간 운전자는 차량을 반듯하게 놓고 운전석의 문을 열고 나왔다. 탁, 운전석 문을 닫는 소리가 운전면허 시험차량 안에서 들었던 탈락음을 되살렸다. 그러자 긴장감이 증폭되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는 파릇파릇한 잎들이 빛을 바라고 있었다. 나는 잠시 후 내가 타야 할 차량에 눈을 떼지 못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반가움에 잠시 흥분되었다가 다시 긴장감으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햇살에 그을린 얼굴은 땀이 맺혀 송골송골 하지만 내 몸은 한겨울 사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실기시험용 차량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털썩 앉았다. 차 안은 열기로 가득했고 바로 앞에 시험을 보고 나갔던 사람의 온기로 의자는 찜질방 방석보다 더 뜨거웠다.


첫 주행시험에서 운전석과 백미러의 위치를 내 몸에 맞게 조절하지 않아 핸들을 잡자마자 탈락 버저음이 울렸었다. 나는 가장 먼저 운전석 의자와 크러치를 밟는 왼발의 위치와 브레이크를 밟을 오른발에 거리를 확인하고 조정했다. 백미러는 나의 눈높이에 맞춰 위아래로 움직여 고정시켰다. 백미러를 조절하는 나의 손은 십자수를 한 땀 한 땀 놓는 마음처럼 예민했다. 

“이번엔 꼭 합격하고 말 거야!” 단단한 벽돌을 하나씩 올리듯 다짐했다.

천천히 오른발을 내밀어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움직임과 동시에 내 귓가에 들리는 소음은 내 심장 박동소리뿐이었다. 핸들을 잡자마자 버저음이 울려 떨어졌던 날의 허망함을 부여잡고 첫 코스를 통과했다. 지난날 주행에서 떨어져 실망감을 앉고 마음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아이가 작은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이제 코스 연습 때마다 감점이 나왔던 언덕만 잘 넘어가면 된다. 왼발을 천천히 올려 크러치의 위치를 확인하고 살짝 엄지발가락에 힘을 줘 눌러보았다. 언덕에서 정지하고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크러치의 중간 지점과 엑셀레이터의 출발 지점이 맞물려 교집합이 되는 순간을 잡아채야 엔진의 소음을 줄일 수 있다. 차가 언덕 아래로 밀려도 감점이고 엔진 소리가 너무 커도 10점 감점으로 시작해 모든 코스를 진행해 나가야 했다.

첫 코스를 잘 넘긴 작은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예민하게 액셀을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긴장감을 놓치고 말았다. 10점 감점을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이번에도 또 떨어지는 건가 허탈함으로 언덕을 넘어 내려오는 순간,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나를 응원하는 듯했다. “그래, 괜찮아 다른 코스에서 감점을 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있어.” 라 생각했다. 의자 조절과 백미러를 확실하게 해 두었으니 연습 때처럼 만하면 감점이 없을 것이다.


나는 언덕을 내려와 S 코스, T 코스를 연립방정식을 하나하나 풀어내듯 하나도 틀리지 않고 백미러에서 보이는 선과 자동차의 위치는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감점 없이 도착지점까지 무사히 운전을 하고 합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운전석을 열고 내리는 순간, 중력을 거슬러 여름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마냥 후련했다. 

운전면허증이 뭐라고….

운전면허 시험장 계단에 앉아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이 일어나서 “엄마~” 하며 외쳤다.

엄마가 운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며 이번엔 떨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교차했다. 아이들과 바다로 드라이브 갈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1999년 면허이다.

20여년 전의 타임캡슐을 꺼내보았다.^^

글쓰기는 타임캠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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