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고 싶은 날이 있어. 말을 걸지 않아도 되고,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조용한 시간이 좋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그건 '혼자 있는 감정'이야. 내가 선택한 고요이고 내 마음이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지.
하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데 혼자가 되어버릴 때가 있어 어디에도 내가 끼어 있지 않고, 누군가의 말속에서 나만 빠져 있는 기분, 그건 '혼자가 되는 감정'이야. 고요가 아니라 고립, 휴식이 아니라 상실이야.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의 에마는 처음엔 사랑을 꿈꿨어. 그러나 남편과의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그녀의 감정은 점점 메말라갔어. 무언가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느낌, 그 외로움은 곧 권태가 되었고, 권태는 결국 그녀를 파괴로 이끌었지. 그녀는 혼자 있고 싶었던 게 아니라, 혼자가 되어버린 자신을 견디지 못했던 거야.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연인> 속의 코니도 비슷해. 전쟁으로 몸이 다친 남편과는 감정이 닿지 않고, 말은 흘러가지만 마음은 자꾸 멀어졌어. 어느 날 남편을 간호하던 유모와 남편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자신만 소외되어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코니는 말없이 자리를 떠났어.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혼자가 되는 순간은 그토록 조용하게, 그러나 깊숙이 우리를 무너뜨리게 해
혼자가 되는 시간은 생명력을 잃어가는 시간이야. 존재가 희미해지고, 감정은 무뎌지고. 그 속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게 되는 거지. 그저 어딘가에 남겨진 채 잊히는 감정이야.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은 주체적인 나를 만나는 시간이야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이고, 그 고독은 나를 성장시키는 발판이 돼.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그레고리우스는 고전문헌학자로 지루한 교사였어. 평생을 질서 있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오던 그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리스본행 기차에 올라.
그 여정은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어. 그건 혼자 '되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혼자 '있기로 선택한' 시간이었어 남들이 정해준 삶에서 벗어나 비로소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지
고독은 우리를 낯선 길로 데려가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가장 진실한 내 얼굴과 마주하게 돼.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끔은 물어야 해. 나는 지금 혼자이고 싶은 걸까 아니면 혼자여야하는 건지를,
이 두 감정은 닮았지만 다르다는 거야.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질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