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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도 내야 할 세금이 있는 거 아니?

by 소소


살다 보면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그냥 지나쳤으면 싶었던 순간들도 있어. 그런데 말이야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그 모든 고통이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줬더라.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걸 ‘수업료’라고 부르지. 값은 비쌌지만, 그만큼 배운 게 있었으니까. 그런데 또 어떤 날은 분노나 두려움, 그리고 이유 없는 우울이 불쑥 밀려올때도 있어. 그건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얻는 것도 아니야. 그냥…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만로 조용히 치러야 하는 감정의 몫이지.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걸 ‘인생의 세금’이라고 했어

가끔은 문득,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여행의 설렘이 아니라, 지금 이 삶에서 조금만 비켜서고 싶은 마음. 잠깐이라도 내려놓고 싶은 마음 말이야. 너무 힘들었던 어떤 순간일 수도 있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올 때도 있어. 그럴 땐 다른 이유없이. 그냥...어딘가 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특히 중년이 되면 더 그래. 젊었을 땐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까 봐 두려웠는데, 중년이 되면 오히려 다 이룬 것 같은데도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 가정도 있고, 일도 있고, 오래된 습관처럼 익숙한 사람들도 곁에 있는데 말이야. 그런데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여기 서 있는 걸까? 어디론가 휩쓸려와 여기에 서 있는 기분.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런 회한이 가슴에 조용히 스며들기도 하지. 그리고 그런 감정은, 자신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켜온 사람일수록 더 깊고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아.


그날, 네가 찾아왔을 때도 그랬어. 멀리 떠나왔다는 설렘보다는 네 어깨에 내려앉은 무거운 짐의 여운이 먼저 느껴졌거든. 짐은 내려놨지만 그 짐이 남기고 간 먼지들은 아직 네 마음 어딘가에 고요히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 먼지는, 어떻게 털어내야 할지도, 어떻게 말로 꺼내야 할지도 모를 감정 같았지. 그저 너를 조용히 감싸고 있는 듯한 기운처럼 느껴졌어.나도 예전에 그런 적 있었거든. 숨 좀 쉬고 싶어서, 무작정 차를 몰고 도망치듯 길을 나섰던 날들.

수업료는 내가 선택한 값진 대가지. 세금은 선택하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거잖아. 삶이란, 기꺼이 배움을 위해 수업료를 내고, 묵묵히 살아내기 위해 감정의 세금도 내는 일인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 네가 느끼는 그 감정들 그건 부끄러운 것도, 사치스러운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용히 감당하고 있는 삶의 방식일 뿐이야.


고통은 내가 선택한 인생의 수업료였고, 공허하고 우울한 감정은 삶이 나에게 조용히 부과한 세금 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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