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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22. 2023

6. 나는 빠져있었을뿐이에요


누군가 인생은 스릴러라고 했다. 그 뒤를 알 수 없다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찬사를 매일같이 날려주던 그 아이가 그렇게 변해버린 것도 스릴러라면 스릴러일수있겠다. 

그 사랑스럽던 아이는 밤에 몰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나에게 들켜서 몇번이고 모진 소리를 들어도, 내가 내 화에 못이겨 소리를 질러대고 울부짖어도 생각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는 바다에 갈 때면 그 드넓은 모래밭에서 열심히 조개를 주웠다. 바다를 보면 기어이 들어가봐야했고, 세상의 모든 조개껍질과 그 파도에 닳은 작은 유리병 조각들이 어느 것보다 소중한 보석이라도 되는 양 줍는데 빠져있어 그만 가자고 재촉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듯했다. 나는 유리조각은 찔리면 위험하다, 는 별 중요하지 않은 이유로 그것들을 버리고 가자고 종용하고 아이는 기어이 큰 울음을 터뜨렸다.

어느 이른 초봄 우리는 통도사의 홍매화를 보러 갔었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바닷가가 지척에 있어서 갑자기 그 곳에 가게 되었다. 일출로 유명한 간절곶도 가고  바다앞 작은 모텔같은 호텔에 방을 잡았었다.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일어나보니 바다앞에는 액자처럼 작은 섬이 떠 있었고 아침 봄볕에 바다는 눈이 멀듯 빛났다. 그 물결을 보고 나는 여기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아이는 또 조개와 소라껍질을 줍는데 빠져있어 언제나처럼 걸음을 재촉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매번 그렇지만 나도 덩달아 조개껍질만 보면 열심히 손이 넘칠새라 줍고 있다. 이상한 조개껍질줍기의 마력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아이가 몇년간 주워오던 그렇게 소중히 비닐봉지에 담아온 조개들은 집에 오는 순간 까맣게 잊혀지는 건 미스테리이기도 하다. 너에게 이 조개들은 무엇이냐, 무슨 의미냐. 대체 조개를 줍던 그 오랜 시간들은 무엇이고 같이 줍던 나는 뭐가 되니, 따져묻고 싶어진다. '엄마는 그 넓었지만 이제는 작아진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고, 아빠는 산골 마을에서 살았단다,' 얘기를 해주며 돌아오는 길에 뒷좌석에 잠든 아이의 작은 얼굴을 보며 .

조개들은 그 순간 나의 행복이었고 나는 거기에 빠져있었을 뿐이예요.

엄마,아무 의미는 없어요. 나는 이 조개들을 한 순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아주 나중에, 아주 나중엔 기억할 거예요, 지금 바로 엄마가 그 옛날 어느 작아진 바다마을 떠올리는 것처럼.이라고 아이는 이미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인생에 그런 것이 한둘이랴. 우리도 알수 없는 순간에 우리를 완전히 지배했다가, 홀연히 놓아버리는 것들. 그 빛나는 바다에서 바다는 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주웠던 조개들을 까맣게 기억도 못하는 일들이,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조개줍는 시간들이.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렇게 이미 타임슬랩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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