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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22. 2023

5.이 아이는 내 아이가 맞습니다

예술인의 피라고는 몇방울밖에 없는 것 같은 이 집안에, 초등학교 공개수업에서 마지막까지 손들고 발표하지 않던 단 한명의 아이가, 개미 한마리도 못 죽일 것 같은 허연 선비의 얼굴을 한 이 아이가, 노래를 한다고?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나의 선택지에 전혀 들어가있지 않은 일이었다.

진심으로, 나는 정말 내가 예체능 입시에 대해 알아볼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첫째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예고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하늘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생각했다. 그냥 평범한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해서 무난하게 대학에 가면 안되 걸까?

나도 스터디카페에서 밤늦게 오는 아이 기다리면서 꾸벅꾸벅 조는 일도 해보고 싶고, 간식 차려놓고 기다리고 싶고, 문제집 사다주는 평범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힘들지만 무사히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스무스하게 대학에 입학하겠지. 아이따라 나도 대학교 어드메에 같이 어슬렁거려보고 싶구만 젠장 왜 내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거냐고. 나는 왠지 그제야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평범이란 많은 좋아보이는 요소들을 합해서 갈아넣은 것이기때문에.

미국 공군이 조종석을 개선할 때 모든 사람의 치수를 평균내어 조종석을 만들었더니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불편한 조종석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평균의 시험대에서 이런 문제가 던져지자 나는 도망가고 싶어졌다. 예측대로 되지 않자 영 불안하고 어색했다. 나의 가치관은 신념이라고 이름붙일 거창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저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방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정작 예측이 빗나가자 나는 아이를 달래도 보았다가 협박도 해봤다가 하룻밤에도 혼자 속으로 백개의 시나리오를 썼다.

정말 누구나 하게 된다는 생각, 이 아이가 내 아이가 맞을까? 병원에서 혹시 바뀐 것은 아닐까?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바로 피할 수 없는 이 때의 질문이다.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탯줄을 두번 감아서 호흡곤란으로 신생아응급실에 입원을 했었는데, 정말로 그 때 아이가 바뀐 것이 아닐...(읍 그만하자)


요즘 말로 어쩌면 컨트롤 프릭, 내 마음대로 다른 사람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화가 나는 나에게 이런 상황은 패닉이었다. 갑자기 멘토가 필요했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있듯이 사춘기 이야기도 수억, 입시 이야기도 수억이었다. 나의 멘토는 어디에도 없는 듯 보였다. 대학 입시로 향하는 기차가 이제 빨리 속도를 더 내야만 할 때,나는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철로가 갈라지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이상 다른 길을 가야했다. 앞으로 우린 마치 산티아고를 걷듯 걸을 것이다. 아이와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걷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앞으로 둘째아이에게서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앞도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질주하는 길들이 예전부터 싫었다. 공부부터, 공부만 해야된다는 것이 싫었다. 젠장, 아이는 내 아이가 맞았다. 알을 깨고 나와야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대다수의 부모들이, 바란다. 내 아이의 평범한, 굴곡없는 삶을. 그러나 어떠한 굴곡들도 멀리서 보면 완만하다. 아주 멀리서 보면. 그리고 무척이나 평범해보이는 내 삶,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평범함이란 얇은 살얼음장같은 현실 위의 고개들에서 사실은 매 순간 선택하고 나아간 결과였다는 것을 잠시 잊고 산 것이다. 이제 그 말은 바꾸어 해석해야할 것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말의 속뜻은 평범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평범한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평범하고 순응하는 것과는 멀었던 내 어린 시절을 자꾸만 소환하며, 이 아이는 내 아이가 맞구나, 끄덕인다. 

그리고 거대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바로 사랑이라는 거대한 실험. 아이가 어떠한 말을 해도, 어떠한 행동을 해도, 무조건 아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실험이다. 어차피 인생은 실험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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