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쓰일지 모를 내 자서전에 '학원없이 명문대 보냈습니다.'라는 왠지 멋드러진 문구는 일단 보류가 되었다.
첫아이가 중학생이 되고도 1년여가 지난 후 처음 치른 시험에 다른 엄마들이 그랬듯 그때서야 뒷목을 잡고 처음으로 수학학원이라는 곳을 알아보는데 이 학원이라는 것이 잘 못하는 과목을 배우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것은 나의 처참하게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학원에 한번도 다니지 않았다고 하니 학원에서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테스트를 보고, 한 곳은 테스트 결과에 따라 다닐 수 없기도 했다. 이쯤되면 순진함을 가장한 귀찮음이었는지 스스로를 심문하게 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나는. 학원이란 못하니까 잘하려고, 배우려고 가려는 곳 아니야?? 왜 돈을 주고서도 들어가네마네 내거 전전긍긍해야하는거지? 마치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서 만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사람에게 바람을 맞은양 당황했다. 나중에서야보니 아이를 학원뺑뺑이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나름의 가치관을 견지했다가 중학교때쯤 시험을 처음 보고는 절박한 심정으로 학원 시장이라는 곳에 처음 문을 두드릴 때, 그 영수 학원이라는 것이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학원처럼 내가 다니고 싶다고 한다고 무조건 다닐 수가 없다는 점에 충격을 받는 엄마들이 나말고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남다른 공부철학이 있는 듯 보이고 싶은 엄마였을 뿐이었나보다고 자책하기에 충분했다.
갑자기 학원들을 알아보고 아이를 종용할 때, 어쩌면 '위선적'이라고 지적하는 대신 말이 없는 나의 아이는 지금 음악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특별한' 엄마가 아닌 그저 '평범한'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8학군 정도로 비견될지 모를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상류층 사회안으로 아이 교육때문에 얼떨결에 편입한 한 작가가 쓴 '파크애비뉴의 영장류'에서도 나만 이런 변명을 늘어놓는 영장류가 아니더라. 저자에 따르면 인류학자들도 조사 목적으로 서모아제도 등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서도 어쩔 수 없이 동화되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인류학자들도 그랬으니까.
아이는 수학학원 몇개월, 영어학원 몇개월을 다녀보다가 완전히 그만두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인정하게 된다. 학원을 보내지 않겠다고 큰 소리 뻥뻥치다가, 사회의 광풍에 나는 휩쓸려가지 않겠다고 아무리 우겨봐야 어느 정도 언제나 어떤 사회에 본능적으로 동화 될수 밖에 없었다고, 나는 어쩔수 없는 영장류인가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