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좋든 싫든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판이 있다. 이판저판, 공사판이 아닌 입시판이다. 한 번은 내가 주인공으로, 또 한 번은 기회가 닿아 결혼을 하고 자식이라도 두게 되면 필연적으로. 이제 나는 누님이 아닌, 돌고 돌아 입시판에 선 한 아주머니가 되었다.
누구나 거쳐간다는, 공부를 시키느냐 마느냐의 두 갈래 길을 지나 선행을 시키느냐 마느냐의 IC를 거쳐 이제 더 무서워서 무섭다고 말도 못하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는 거의 내가 '학부모'라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해본 적이 없었다. 치열해서 무서울 지경인 사교육 시장을 거의 외면하다시피 살아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그때부터 마치 내가 입학한 양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신경 쓰고 입시카페에 가입해서 입시제도에 관해 살펴보는 등 생전 안 하던 짓들을 하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었다. 그 아이가 "나는 가수하고 싶어요. 대학 안 가도 돼요"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물론 우리 부부가 "꼭 대학에 가야한다"라고 말해오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 말이 "꼭 대학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아니지 않는가.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원자폭탄선언은 아니다, 라고 말하기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그 정도 급의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거의 온실같은 우리집에서는.
그 전부터 약간의 전조는 있었다. 사건은 언제나 갑자기 오지 않는다. 예고를 가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건 내 눈을 가리고 숨었다고 생각하는 타조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원한 것은 이런게 아닌데, 나는 많은 자책을 했다. 아이가 도둑질을 했다는 것도 아닌데, 나는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단지 내가 예상했고 기대했던 길과는 많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것일까 혼자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후회했다.
에피쿠로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함으로서 행복하지 않은 병약한 상태가 된다고 했듯, 나는 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을 욕망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입시 카페처럼 현란한 수시 입시의 아이템들속에서 입시판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뭔가 익사이팅한 게임을 앞둔 것처럼 혼자 시동을 걸었지만, 사실 고등학교 1학기가 채 지나지 않아 난 내 시험기간에도 밤을 새본 적 없다는 것을 상기했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를 기다리는 그런 로망은 체력 때문에 애시당초 안되겠구나 깨달았다. 이제 조금은 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대로 바라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나는 갖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을 힘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아이로 키웠구나, 오늘도 나는 노래를 부르러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자뻑도 이런 자뻑이 없지만, 마음속 깊이 '내가 애를 잘 키웠군' 고개를 주억거려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