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ch Led British Empire to Singapore?
16세기 포르투갈, 스페인을 뒤따라간 '후발주자 영국'
잘 알다시피 중세시대 유럽의 동방, 동아시아 진출은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시작됐다. 1세기를 지난 17세기에는 스페인 영토였다 독립했던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뒤를 이었고, 네덜란드인(화란, 홀란드인 이라고도 함)들이 동방무역을 갔다오는 배에서 귀한 물건, 재료들을 가득 싣고 오는 걸 본 한 나라, 바로 '영국'이 대항해시대 서막에 후발주자로 동참하게 된 셈이다.
후발주자 영국이 동아시아 1위를 탈환하다 - 'OOOO'
영국은 대항해시대에 본격 동참한 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동방무역의 중심 국가로 급부상한다. 바로 18세기 '산업혁명' 덕분이다. 증기기관의 발명, 기계식 공장 시스템을 구축한 영국 산업시스템의 전면 개조로, 유럽국가 내 압도적 생산량을 기반으로 한 막대한 소득/경제력을 구축한 유럽 내 1위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소위 '대영제국(British Empire)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오늘날의 미국을 강대국이라 하지만, 당시 대영제국은 식민지를 포함한 전세계 땅의 1/4을 보유했고, 전세계 인구의 1/6이 영국령에 속했다. 이미 약 3~400년 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영어를 접하고 영어권 문화를 접했기 때문에, 영어가 지금의 만국 공통어가 된 것은 미국이 아닌 영국의 영향력 덕분이다. 과히 '한류'를 너머 '영류'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왜 하필 '싱가포르'였을까?
앞서 언급한 국가들, 소위 '유럽 군단'이 아시아로 진출한 바다의 항로는 매우 다양하다. 당시 위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닷길이 명확하게 그려진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육지가 보이면 깃발을 꽂고, 또 거기서 다시 시작해 다음 나라로 건너는, 쉽게 말해 '돌다리도 두들겨 봐라' 식의 원스텝, 투스텝 항로 찾기였다.
그렇게 동쪽으로는 남아공의 희망봉을 찾았고, 서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을 찾은 것이다. 새로운 경로를 찾은 건 맞지만, 여전히 배를 타고 자연과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는 가장 익숙한 길을 찾아야 했다. 그곳이 바로 싱가포르/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를 지나는 '말라야 해협'이다. 즉, 배를 타고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가장 편하고 익숙한 길목이 '싱가포르'였던 것이다.
드디어 싱가포르를 장악하다
영국의 정치인이자 군인이었던 래플스(Sir Thomas Stamford Raffles) 경은 배 위에서 태어난 출생지 탓인지, 주로 동방무역 지배권 다툼에서 발생하는 네덜란드와의 치열한 다툼에 영국을 수호하는 선봉장이었다. 1819년, 네덜란드군이 싱가포르로 진격하는 것을 막은 그는, 영국이 싱가포르에 본격 자리를 잡게 하는 소위 '싱가포르의 콜럼버스'와 같은 존재였다.
당시 말레이 반도에서 생산되던 주석, 고무를 싱가포르로 운반해 유럽으로 배송하는 항구 역할을 수행했고, 외국 교역이 활성화되자 새로운 기회를 노리던 주변 국가의 중국 화교인, 인도인 등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그 중에서도 중국 화교가 인구 전체 약 70%에 달했다고 한다). 주석, 고무 제조공장을 만들거나, 항구에 정박하는 선박의 수리나 제조를 맡아 큰 돈을 버는 자본가 계층이 급증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여 전시물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석, 고무 자재를 수입코자 하는 세계 각국의 수요를 말레이 반도에서 흡수하기 시작했다.
힘과 권력은 움직이는 사람에게 주는 '특권'이다
머무는 자에겐 어떠한 기회도 가능성도 주지 않는다
움직이는 나라, 미래의 나라 '싱가포르(Singap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