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uan Yew Prime Minister of Singapore
흔히 일본을 이어 아시아의 미래를 책임질 '네 마리의 용'을 가리켜,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을 일컫는다. 그러나 용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머리가 방향을 틀어야 꼬리가 그 뒤를 따르듯, 한국의 용머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싱가포르의 용머리는 '리콴유'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두 사람에 대한 도덕적 잣대, 경제기여에 대한 공헌의 크기 등 부수적인 논의들은 모두 번외로 한다)
1917년 출생 박정희. 1923년 출생 리콴유. 태평양 먼 바다와 대륙을 건너 한평생 만나볼 수 없는 먼 나라에서 태어난 둘이지만, 단 하나의 필수불가결한 태생적 공통점을 갖고 태어나고 자랐다.
'일본'. Japan.
박정희가 태어난 해는 1910년 한일합병 이후 한반도에 일본 문화, 사람, 정치/제도가 주입되는 시기였고, 어린 박정희는 일본이 세운 구미공립보통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며 자랐다. 분필을 잡던 사범학교 선생님에서 일본 육사로 편입하여 칼을 쥐게 된 군인 박정희의 삶은 한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일제(일본)가 장악한 한반도의 치욕 시대가 나은 역사적 인물, 산물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리콴유는 1923년 싱가포르 한 중국인 부잣집 아이로 태어났다. 싱가포르, 말레이반도를 통틀어 최고 명문 사립학교로 손꼽히던 '래플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래플스 칼리지'로 수석 입학하며 탄탄한 여생이 보장되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1941년 일본이 미국땅 하와이를 침공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벌어졌고, 영국령이었던 싱가포르도 곧 일본군에 점령당하고 만다. 일본군은 싱가포르에 정착하자마자 중국인 약 10만 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 때 리콴유도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후술하고 있다. 1945년 일본군이 세계 2차대전에서 패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리콴유는 물론 싱가포르 또한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았을까?
1945년 전쟁이 끝났지만, 눈 앞에서 동족, 친구들이 일본군 총칼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 본 리콴유. 어릴 적 영국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에서 영국식 교육, 영어를 사용했던 리콴유는 영국으로 유학을 결심한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정치/경제를 배우다 1년 만에 케임브리지대학 법대로 편입한다. (이유는 도시의 시끌벅적함에 싫어서 였다고..?) 다행히 법대를 무사히(?) 졸업 후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지만, 졸업 후 그는 곧바로 고향, 싱가포르로 향한다. 애초에 영국은 그의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