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회사라면 퇴사가 확정되고 한 달 전쯤에 '죄송하지만, 이러이러한 이유로 퇴사하겠습니다.'고 말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지 채용이라면 더 길 수도 있고요. 제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그런데 지금 제가 몸 담은 회사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비율이야 어쨌든지 간에, 저도 돈을 출자해서 시작한 스타트업이고 명분뿐이라도 Co-Founder니까요. 이미 이름만 남은건 안 비밀.
제가 여기를 떠난다고 말 하는 건, 인력 한 명이 나간다가 아니라 함께하는 동료들을 떠난다에 가깝습니다. 잔존하는 동료들을 정신적으로 흔드는 일임과 동시에, 앞으로 나가려는 리더에게 타이레놀로는 해결 못할 마음의 두통을 만드는 일이니까요. 네, 저도 압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함께할 계획이 없습니다.
내뱉어진 말은, 보기에는 쉬워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세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을 시작한 1월에, 한 동료가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아주 작은 파장이라고 느꼈던 흔들림은 사실 꽤나 컸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아마 모두가 비슷하게 느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제 말 또한 멤버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커다란 파도를 만들었을 겁니다. 이미 다들 흔들리고 있던 찰나에 제가 스타트를 끊은 상황입니다. 앞으로 어떤 국면이 나타날지 잘 모르겠네요.
퇴사를 하더라도 5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벌써 이런 의견을 밝히는 건, 경고도 아니고 예고도 아닙니다. 제 빈 자리를 미리 감안하고 미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메세지입니다. 제가 몸 담은 조직이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비록 저는 이 조직을 떠날 지라도 이 조직은 장기적인 미래 전략을 세우고 계획을 수립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런 논의를 할 때, 누가 얼마나 함께 갈 지 알지 못하면 모래로 성 쌓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 많이, 아주 깊게, 그리고 진지하게 같이 갈 사람들끼리 고민한 뒤 재정비 하고 다시 앞으로 점진했으면...합니다.
천사소녀 네티도 아니고...
퇴사를 해 보면서 알게 된 건, 퇴사를 고민하는 시점에서야 제가 어디에 애정을 두었는지 알게 된다는 겁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현지 말레이 말레이시아인들 그리고 함께 일한 한국 스태프들에게, 두 번째 회사에선 현지 라트비안 스피킹 라트비아 직원들과 제가 다루던 시스템에, 세 번째 회사에선 사수님을 비롯한 선배님들, 함께 고생한 동료들 그리고 직함 타이틀에 애정을 주었습니다. 지금 몸 담은 회사는 이름에 참 마음이 많이 갑니다. 이 조직의 이름이 어느날 시장에서 굳건히 자리 잡고 잘 알려진다면 정말 순수하게 기쁠 거 같습니다.
이야기를 다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려다 다시 가방에 넣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회사를 위해 남은 기간 동안 더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더 해주고 싶은 건 무엇인지.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별을 예고하고 나니 마음의 짐덩이가 내려가고, 그 빈 공간을 의욕이 채우는 기분입니다. 아무 질책 없이 담담히 받아 들여준 동료들과 훗날을 기약하자고 이야기하는 리더를 보며, 고마웠습니다. 운이 좋다면 그리고 뜻이 통한다면 앞으로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하고 바랍니다.
아무튼, 다시 요점으로 돌아오자면 저는 회사와 동료들에게는 끝을 예고했습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