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배도 안 고파서 딱 시원한 맥주가 사무치는 날들이 있다. 기대를 가득 안고 우붓에서 짱구로 넘어온 날의 내 상태가 딱 그랬다.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힘든 날이었지만,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발리의 극한 더위를 이겼다. 내리쬐는 해를 모자로 대충 가리고 하루종일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새로움을 탐방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훌쩍 저녁시간은 지나있었다. 내 머릿속 회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It’s Beer TIme!!!!
이런 날에는 어디서 마시든 대체로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조금은 fancy 한 곳에서 시끌벅적하게 마시고 싶다. 하루종일 쌓인 흥겨움을 따로 또 같이 머물며 스르륵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은 pub이 제격이다. 마침 4병의 맥주를 담아주는 beer bucket 가격이 좋은 곳이 바로 눈에 보여서 홀린 듯이 들어갔다.
웃음을 한껏 머금고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beer bucket을 달라고 하면, 그 마음 안다는 듯이 싱긋 웃는다. 이것이 짱구의 바이브구나. 발리에 오자마자 정글 속에 있던 우붓에 머물렀다 보니, 바닷가에 있는 데다 최근에 개발되기 시작하여 힙의 성지가 된 짱구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웃음으로 단번에 적응이 되었다. 여긴 이렇구나! 그냥 신나 있으면 되는구나!
한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시간은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책 읽다가 동해진 마음을 트니와 함께 나누며 우르르 쏟아내는 날들이었다. 트니가 없어서 2단계까지는 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으니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 짱구는 이렇게 즐기면 되겠다는 마음에 애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사실 우붓에서 짱구로 넘어오면서 걱정이 많았다. 직전에는 그냥 숙소를 취소하고 우붓에 계속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붓에 대한 애정이 컸다. 짱구에 온 첫날 너무 상업화되었다는 느낌에다가 정신없는 트래픽, 여기저기서 나는 이상한 냄새에 발리다운 느낌이 없다는 생각이 크게 들어서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역시 발리는 모든 곳이 매력적이지! Beer Bucket 한 방에 마음이 확 바뀌었다. 제대로 즐길 준비가 된 기분이다.
발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머금고 있다. 여행객들은 일상을 떠나 기쁨을 찾아 여행을 왔으니 즐겁지 않을 리 없고, 발리 사람들은 워낙 웃음이 많다. 나는 그 웃음들에 둘러싸여 점점 더 행복해진다. 기본적으로 미소를 띠고 있는 시간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이곳에서 오늘 만난 사람들도 모두 행복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일을 하며 여행하는 워케이션은 생각보다 훨씬 삶에 균형을 가져다준다. 특히 ‘일과 쉼’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일과 삶의 경계를 두는 것을 흔히들 워라밸이라고 하는데, 삶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쉼’이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현실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일과 쉼으로 이루어진 삶, 그 둘의 비율을 두고 싸우는 것보다 확실하게 구분하는 게 오히려 균형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을 쉼으로 포장하며 살다가, 생생한 쉼의 순간들을 만나며 나는 생기를 되찾고 있다. 정확히 다른 두 개념을 인식하게 된 것이 이번 워케이션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일하고 여행하며 얻어온 에너지와 생각, 얻어와서 내 안에서 점점 더 커진 에너지와 생각. 모두 다 고이 담아 한국으로 가져가야지. 맥주 마시다가 든 생각 끝! 결론은 짱구도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