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날이 제대로 장날이었다.
원래 계획은 우붓에서 2주, 짱구에서의 2주였다. 하지만 짱구에서 2주간 머물겠다는 계획을 1주로 변경하고 다시 우붓으로 돌아간 이유는 오고오고와 녜삐데이를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나는 신기하게도 여행을 가면 그 동네 로컬 축제에 잘 얻어걸리는 편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축제의 축복이 나에게 왔다.
발리에는 우리로 치면 음력 설인, 녜피 데이(Nyepi Day, Scilent Day, 발리 사카 달력의 1월 1일)가 있다. 이 날은 공항도 문을 닫고 발리섬 위로는 비행기도 지나가지 않는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차도 다니지 않는 데다가 전화나 인터넷도 끊기는 정말 침묵의 날. 발리 전체가 멈추는 날이다.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발리는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녜피 데이는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새해를 다짐하는 명상의 날이다. 전통과 로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붓은 그중에서도 녜피를 더욱 잘 챙기는 곳이었다.
녜피 전 날은 오고오고(Ogoh-ogoh)라는 엄청난 퍼레이드 행사가 있다. 각 마을에서 만든 엄청난 크기의 대형 악령들을 물리치는 행사인데, 평소에 차와 오토바이로 가득 차던 우붓의 거리가 이 대형 악령들의 퍼레이드와 공연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 오고오고는 각 마을의 청소년들이 나무와 종이를 이용해서 약 1달 정도 만든다고 한다. 마을 단위의 생활을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는 발리이다 보니 각 마을마다 오고 오고에 담긴 스토리들도 명확해서, 그들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내가 발리에 도착한 것이 녜삐를 딱 1달 앞둔 시기여서, 마을을 돌아다닐때마다 오고 오고(대형 악령 모형)를 만들기 위해 학교를 다녀오고 난 뒤에 공터에 앉아 나무를 다듬고 종이를 붙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만들었다기에는 굉장히 수준급의 공예 작품이었는데, 이것도 마을 안에서 전수받는 하나의 문화라고 한다. 나에게 설명해주는 발리 사람들은 우리도 한 때 열심히 만들었지 하면서 각종 에피소드를 쏟아놓기도 했다.
자연을 아끼는 발리 사람들은 오고 오고를 만들 때도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나무와 종이로만 그 큰 조형물을 만든다. 옷을 만들 때도 천을 재활용한다고 한다. 한국의 축제들에는 플라스틱과 비닐 천으로 가득한 조형물들이 가득하고, 축제 이후에는 방치되다가 버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점은 참 배울만하다고 생각했다.
오고 오고는 발리 전체에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 우붓은 예술과 종교의 도시이다보니 조금 더 크고 화려한 편이다. 오후 2시 쯤부터 차가 사라지더니 엄청난 크기의 오고 오고들이 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오고 오고를 짊어지고 노래를 부르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면서 행진하며 움직이니 사람들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면 오고 오고들의 스토리텔링과 공연이 시작된다. 각 마을별로 대결을 진행하듯이 하나씩 나와서 준비한 공연을 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수준급이었다. 발리가 정말 신의 도시였구나를 새삼 실감하기도 했다. 악령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노래와 무용으로 풀어내는데, 마을 단위의 활동이 거의 사라진 요즘이어서 그런지 한 마을이 이렇게 합심하여 축제를 준비하고 움직인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엄청난 인원들이 합심해서 움직이며 오고 오고를 미친듯이 흔들기도 하고, 큰 반경으로 빠르게 이동하기도 하면서 축제의 분위기를 북돋았다. 이 정도로 움직이고 나면 피곤해서 내일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침묵의 날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격렬하고 흥겨웠다. 진짜 축제 그 자체였다. 큰 오고 오고들 사이에 꼬마들이 만든 작은 오고 오고의 행렬들도 간간이 있었는데, 원숭이와 같이 작은 모형들을 짊어지고 까르르 뛰어다니는 아기들이 정말 귀여웠다.
이렇게 퍼레이드가 끝나면 순식간에 흥겨움이 사라지고 한없는 어둠과 침묵 모드로 전환된다. 반전의 매력이 있었다. 저녁에 시작하여 즐기다보면 한밤에 끝나는데, 나는 숙소가 멀지 않아서 걸어갔다. 늘 사람과 자동차, 오토바이로 가득찼던 거리가 텅 비고 까만 어둠이 짙어져 휴대폰 손전등에 기대어 걷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었다. 흥겨움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바로 침묵 모드로 전환되어 한없이 평화로운 우붓. 그 반전의 매력을 동시에 즐긴 오고 오고의 밤. 종교와 문화의 힘과 결집력에 대해서 생각하며, 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별들이 쏟아지던 밤거리에 감탄하며, 우붓으로 돌아오길 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걸었던 기쁨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