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이 잘 된 곳이라 그런지 아파트 곳곳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다. 시골집에서 소나무는 산과 구름, 바람과 햇살로 더불어 어울린다 생각했는데 도시의 소나무도 외롭게 높이 서있는 아파트와 동무해 그런지 나름 조화롭게 보인다. 제대로 된 조경 설계로, 한번 자리 잡으면 옮기기도 쉽지 않은 소나무를 적절하게 배치한 전문가의 손길 덕 일수도 있겠지만, 낯선 곳도 마다하지 않고 뿌리를 잘 내려준 소나무가 더 고맙게 여겨진다. 아마도 삭막하게 서있는 아파트가 안쓰럽고 외로워 보여 친구 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며 서로에게 좋은 동무가 되어 준 것이리라.
우리 마을은 산 중턱에 위치한 곳인데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는 소나무산으로 불렸다니 소나무가 자라기 좋은 곳이었던 것 같다. 여러 나무들 사이에 서로 다른 모습의 소나무들이 균형을 맞추며 산의 조화를 이뤄가면서도 위엄이 있다. 구름도 앉아 가는 여유로운 아이, 한뿌리에서 시작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금슬 좋은 부부 소나무, 쓰러질 듯하면서도 다시 올라가 오히려 하늘에 가까운 노송도 있다. 아름드리 굵은 몸엔 세월의 연륜이 아로새겨져 흉내 낼 수 없는 자태를 담고 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오면서 곁을 스치며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또 다른 이웃들에게 그들만의 이야기로 동화시켜 전해준다. 소나무만 보고 산책해도 아쉬울 것이 없는 정경이다.
일전에 방문했던 지인에게 이런 소나무 한 두 그루만 신축아파트 조경을 위해 잘 옮겨심기만 할 수 있다면 수천만 원 아니 억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도시의 명품아파트들은 아파트 높이에 걸맞게 멋진 소나무로 조경하는데, 소나무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다고 한다.
그런 명품 아이들을 원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 이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마을 뒷산의 소나무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아이들이다. 아름드리 당당한 자태로 푸른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워낙 크고 당당해 이런 아이들은 옮기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그렇기에 아직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도 소나무는 제자리를 겸손히 지키고 있다.
마당에도 소나무들이 여럿 있다. 특별히 더 마음이 가는 여린 아이도 있다. 5년 전에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사 온 소나무인데,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휘어져 있어 굵게 크게 자라지는 못할 것 같은 아이다.
다소곳한 자태가 배울듯해 "겸손송"이라 붙였다.
여러 해 전 어느 날 산책 중 새끼손가락만 한 소나무 모종이 산길 가운데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밟힐 것 같아 데려와 돌담사이에 심었다. 아무것도 해 준 것 없지만, 돌틈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고 제법 자라 가고 있다. 돌 담 정원에는 분재에서 옮겨 심었던 소나무들도 자리를 잡고 지피식물들 사이에서 초록의 품위를 잃지 않는다.
자연 속에 살아가는 소나무는 누구 손을 탈 수 없다. 제가 알아서 버리기도 하고 가져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과 함께 하는 소나무들은 다듬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세련되게 다듬어 주지 못하는 마당의 소나무들에게 미안키도 하지만, 어쩌면 손을 대지 않아 도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지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교토여행에서 청수사의 오래된 소나무들을 만났었다. 몇백 년은 훌쩍된 소나무들을 비롯해 많은 소나무가 있었는데 입구의 소나무는 장엄한 모습에 비해 꼭대기 가지를 말끔히 전정해 가지도 솔잎은 거의 없었다. 모든 나무가 그렇겠지만 특별히 소나무는 바람이 통해야 잘 산다고 한다. 바람이 통할 공간을 어찌 길이로 가늠할 수 있을까... 생명 외에는 모두 비운다 할 정도로 가지 친 것 같았다.
저렇게 벗어버리면 겨울나기도 추울 텐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런데 그래야 산다고 한다.
지니고 살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한 자루의 장검만으로 임전했던 무사들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문득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게 바람길도 열어주지 못한 정원의 소나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딜 가나 소나무는 있다. 로마로 들어가는 길엔 유독 키가 큰 소나무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소나무들은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아피아 가도를 달려갈 때 바람과 그늘을 만들어 주던 소나무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가를 줄 알면서도 세월 속에 오롯이 앉아있는, 그이가 소나무다.
오늘처럼 흐리고 울적한 날에 소나무를 보면 더 고맙다.
쪽쪽 올라가는 멋있는 몸매의 아이들도 있지만, 마당 한 귀퉁이에서 한 번도 등을 제대로 펴보지 못한 구부정한 상태로도 언제나 푸른 제 모습을 잊지 않고 있는 아이...
같이 심은 아이들은 유년의 티를 벗어 버리고 제법 어른송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데, 심어준 자리 탓일까.
분명 자리 탓이리라. 자연 속에선 어디서 떨어져 터를 잡느냐가 아주 중요한데, 마당에선 내가 집터를 만들어 줬으니,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국 커다란 차별로 남게 된 것이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 나이는 같이 먹었지만, 작은 몸뚱이로 꿋꿋이 버티고 있어 패 낼 수 없다.
삶의 도전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응전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용기를 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뭐라고...
나는 뭐가 더 잘나서...
하릴없이 수그러질 수밖에 없는 그림을 안겨주는 소중한 소나무들...
언제나 푸르게 한결같은 위안이라도 안겨 주려는 듯, 변함없는 모습으로 오늘도 곁을 내어주는 네가
고마울 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겸손송
장미와 백합에 둘러싸여 제 모습을 제대로 돋보이진 못하지만, 제법 커다란 대문옆 소나무/나이는 먹었지만 아직 아기티를 못 벗은 작은 소나무
로마 시내에는 가로수로 소나무를 심은 곳이 많다
우리네와는 살짝 다른 듯한 로마의 소나무들
뒷 산 언덕에 홀로 고고한 소나무의 살결을 더듬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