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나는
2025년 08월 03일 일요일 - [녹] 연중 제18주일 미사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8주일입니다. 만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아버지의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욕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을 찾도록 합시다.
화답송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시편 90(89), 3-4 (가톨릭 교회 공용 번역)
제1독서
<그 모든 노고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1,2; 2,21-23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2,21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22 그렇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23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신심 깊은 신자는 아니다.
그저 주일미사 안 빠지려 애쓰는 일명 '발바닥 신자'이다.
하지만 삶의 중심에 늘 주님을 두려고 애쓰고 있다.
오래전부터 신앙의 성장을 위해 성가든 성서든 미사 중 받은 은총을 묵상 기록으로 남기려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제 막 시작했고,
이 첫 마음
주님께서 오래도록 잡아주시길 기도한다.
매주 일요일엔 새벽미사에서 성가반주를 하는 언니와 미사에 참례한다.
새벽미사에는 노인들이 다수이고, 거동이 불편한 나이 드신 분들은 맨 앞자리에 서서 영성체를 하신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보다 오히려 다가올 내 미래라 친근하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움직일 수 있어 미사참례를 할 수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큰 은총을 받고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파견 성가는 내가 유달리 좋아하는 〈주님과 나는〉이다.
좋아하는 성가인데 언니가 하는 반주로 성가를 부르는 것도 참 감사하다.
새벽 산책을 나가 숲 속을 걷다 보면, 어젯밤까지 맴돌던 근심이 물러나고 주님과 나누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대화가 시작된다.
주님은 과거의 실수와 죄를 묻지 않으시고, 함께 가자 하신다.
“주님과 나는 함께 걸”으며, “손을 맞잡고”있다는 느낌이 들면 발아래 흙조차 향기롭다.
나와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던 신과 인간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거리는 녹아 없어지고 하느님은 머나먼 하늘이 아니라 내 걸음 속에 머무는 분임을 알게 된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행복을 매일 누리고 있으니 그저 감사하다.
어린 딸이 아빠손을 잡고 하루일을 조잘조잘 속삭이다 보면 간혹 찾아오는 어려움과 슬픔쯤은 든든한 아빠의 어깨에 맞겨드릴 용기가 생긴다.
사랑하는 반려견을 앞세우고, 숲 속을 산책하노라면 자연이 주는 평화와 아름다움에 저절로 주님을 찬미하게 되고 나에게 허락된 이 시간이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언니와 함께 산책하며 매일 이런저런 이야기로 고운 정, 다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각별한 형제우애를 복으로 주셨으니 더없이 감사하다.
물론 아옹다옹할 때도 있다.
이렇게 믿고 의지할 형제자매가 있고, 영원한 친구이신 주님이 매 순간 동행하시니, 이 세상 두려움을 건너가기에 이보다 더한 무기가 있을까?
완전하지는 않지만 세상의 꿈보다 천국에 지향을 두고 기도하며, 험하고 먼 길 주님이 동행하리라는 확신이 있으니, 비록 내일의 불안과 허무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 세상 꿈이 모두 사라질 때”라 해도 두렵지 않은 까닭은, 이미 걷고 있는 이곳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험하고 먼 길을 걸을 때, 내 곁에는 늘 함께 걸어가는 “생명의 친구”가 있다.
그분은 때론 침묵으로, 때론 바람으로 말을 건네신다.
험하고 먼 길마저 주님께서 “생명의 친구”가 되어 동행해 주시니 잠시의 세상을 충실히 살겠다는 다짐 역시 동행의 열매다.
주님과 나, 둘이서 걷는 오늘이
삶 목적지이자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