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by 보리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2025년 08월 17일 일요일


[녹] 연중 제20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20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반대를 받는 표적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사람 마음의 비밀을 밝히시어, 사람들이 진리와 은총을 거부하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시대의 표징을 깨달아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도록 합시다.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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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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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1.jpg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 말씀을 접했을 때, 당황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평화의 주님이 어찌 ‘분열’을 말씀하실까?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말씀은 더 자극적이라

'예수님 방화범이세요? 왜? 왜?'라며

모순된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앙 안에서의 갈등,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 되는 사회분열, 그리고 약한 이들에게 가장 비참한 전쟁,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분열’이 맞다.

도대체 하느님이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역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세속적 안락의 평화가 아니라

진리를 위한 갈등과 결단을 요구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을 들어도

세상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과 전쟁을 바라보면,

정녕 주님은 분열을 원하시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주님의 뜻은 세속적 안락의 평화가 아니며, 진리 앞에 서려면 갈등을 감수해야 하고,

그 갈등은 결국 참된 평화를 향한 정화의 과정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남아있다.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세계 안에서

주님께서는

끊임없는 분열을 보며

나의 식어버린 마음을 불러내어

다시 기도하라 초대하셨다.


한때는 뜨겁기도 했지만

어느새 묵상도 기도도 소홀해진 나를 부르시는 주님.

그래서 짧은 묵상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신 주님.


성 아우구스티노가 “그리스도의 평화는 세속적 화해가 아니라, 불의에서 벗어나 정의와 진리로 이끄는 평화다.”라고 하신 말씀이 조금씩 이해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새벽미사 제대 앞에 놓인 꽃을 보며 감사가 흘러나왔다.

꽃은 하느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

세상의 분열 속에서도

잠시나마 꽃 같은 평화를

누구나 맛볼 수 있기를,

그 평화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한 송이씩 피어나기를

기도하며...............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평화이시다(에페 2,14)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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