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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티 Mar 04. 2017

일본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담 3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의외로 재미있다고 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용기를 얻어 써 본다. 제일 힘들었고 길었던 아르바이트라 되돌아보려니 손이 잘 움직여주지 않는 게 함정.

'이러려고 내가 일본 아르바이트 경험담을 쓰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유행따라 민감하게 - 글을 저장해놓은 사이 이미 지나간 유행어가 되어버렸나 싶다...ㅎㅎ )




마지막 아르바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전문학교에 입학은 어렵게 했으나,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갑자기 잘리게 된 나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사이트와 구인 잡지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기숙사가 있는 아르바이트를 발견했다는 말에 구인 페이지를 확인, 바로 전화를 넣어 면접을 보고 싶다 했다. 아르바이트 직원이 급했는지(?!) 혹시 그날 바로 면접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알겠다고 했다. 전화를 한 시간이 저녁 7시 반쯤이었는데, 10시에 오라고. (이때 알았어야 했는데... 급하게 구하는 곳은 이유가 있는 거라고 ㅠ ㅠ)


다음 아르바이트로 구한 곳은 60년 이상 된 야끼니꾸(고깃집) 노점포였다.

처음이라 길을 헤맬까 싶어 30분 전에 근처 역에 도착해서 가게를 찾았는데 무척 가까웠다. 럭키.

일본에서는 약속시간보다 너무 빨리 가는 것도 실례라고 해서, 대충 시간을 때우다가 10분 전에 가게에 도착. 면접을 봤고 다음 주부터 바로 일 해달라는 사장님의 요구에 오케이. 나도 급했으니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같이 일하던 나태한 일본인 점장(점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름만 점장. 사장 아님.)부터, 조선족 여자 유학생 둘에 한국인 남자 유학생 하나. 다들 불친절했고, 고깃집에서 처음으로 일을 해보는 내게 아주 엄격했다. 경험이 부족한 내게 처음부터 경험자의 대응을 요구했다.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버텨냈다.


어찌어찌 그만둘 수 없어 버티고 있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주방에서 고기를 썰던 10년(한국인), 13년(일본인) 경력의 아저씨 둘의 위압적인 태도였다. 이 아저씨들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실수를 하면,  손님이 있든 없든 고기를 썰던 칼을 든 채 소리를 질러대고, 화를 냈다. 그 모습이 내겐 무척 무서웠다.

주방에는 아저씨 둘과 70세 정도 된 할아버지가 한 분 그리고 주방보조로 한국인 유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아저씨들은 할아버지를 엄청 괴롭혔었다. 이 할아버지는 가게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사장님의 아버지 대부터 주방에서 일하시던 분인데, 연세가 드시니 깜빡하시기도 하고, 실수도 하셔서 그만두고 싶어 하셨는데, 사장님의 만류로 계속 남아 계셨던 상황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주방 10년 차 한국인 아저씨가 가게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13년 차 일본인 아저씨가 사장님 빼고 직원들끼리 송별회를 하자며 전화번호를 물어왔다. (이게 악몽의 시작일 줄은....)

난 당연히 송별회 연락 때문이라 아무런 의심 없이 연락처를 주었고. 며칠 뒤 송별회를 하자며 일본인 아저씨가 전화를 해왔다.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이 아저씨뿐. 다들 어디 갔냐고 했더니 이런저런 이유로 못 왔다고 한다. 거기다 송별회라고 불러서 갔더니 정작 당사자인 한국인 아저씨도 안 왔다. (핑계를 대고 나만 불러낸 것 같기도 했다.)


기왕에 나왔으니 저녁이나 먹자고 고기를 사주겠다 하길래, 제대로 못 먹고살던 유학생이라 얻어먹을 생각에 냉큼 따라나섰는데, 이게 그 아저씨가 착각을 하게 된 발단이었나 싶다. 내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어서 식사를 같이 한 것이라고 혼자 착각해버린 것 같았는데,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직 파릇한 20대 후반이었고, 그 아저씨는 40이 넘은 이혼남이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 보면 40대 초반이 무슨 아저씨냐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절대 오빠라고 부를 수 없었던 비주얼.)


이때부터 이 아저씨가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생트집을 잡아가며 일에 딴지를 걸어왔고, 일이 끝나면 시도 때도 없이 단둘이 저녁을 먹자는 둥, 술을 마시자는 둥 전화를 해왔다. 가끔가다 전화를 못 받거나, 일부러 안 받거나 하면 음성메시지를 남겨서 이런저런 협박을 해 왔다. 일 그만두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꺼지라는) 둥, 심지어 죽어버리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남겼다. 나는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이 가게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던 중 그 아저씨가 생트집을 잡으며 화를 내고 당장 그만두라고, 너네 나라로 떠나라고 소리를 질러대서, 더 이상 못 참겠어서 알겠다 그만두겠다. 하며 나도 앞치마를 벗어던졌고, 카운터에서 일을 보던 사장님에게 가서 지금 당장 그만두겠다. 저 아저씨 때문에 도저히 일 못하겠다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면담을 하자며 개인실로 나를 불렀고, 나는 당장에 그만둘 생각으로 그동안 있었던 괴롭힘에 관한 이야기와, 그 밖의 악행들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70세가 넘은 주방 할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거나, 홀 직원들에게 욕설을 한다든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나뿐 아니라 모두가 일하기 힘들었다는 말도.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가려다가 아저씨가 따라 나올까 너무 무섭고 해서 아는 동생 중에 건장한 친구를 하나 불러서 가게까지 데리러 오도록 부탁까지 했다.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가 당분간 아는 분 댁에서 지내려고 짐을 싸서 나가려는데, 사장 부인이 이야기 좀 하자며 불렀다. 차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나를 이해해 주는 척하며 말을 했고,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는 가게에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처신 제대로 못하는 여자로 돌려 말했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심지어 네가 뭔가 오해하도록 행동한 것이 아니냐라는 말까지...)


집에 돌아가는데도 계속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무시했다. 음성메시지를 들어보니 미안하다는 둥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둥의 어설픈 사과의 말이었다. 계속 무시하자 나중에는 욕설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날 바로 전화번호를 변경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사용한 외우기도 쉽고, 정든 번호였는데 ㅠㅠ)


그리고는 잊어버리려 노력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학교 체육제 날이었다. 학교가 도심 한가운데 있는 데다, 운동장이 없어서 가까운 지역의 공원 체육시설을 빌려 체육제를 개최했는데 내가 참여하는 구기종목까지 시간이 남아있어 벤치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벤치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다른 경기를 구경하고 있는데, 순간 공포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물론 나겠지.)

나는 너무 겁이 나서, 내가 먼저 발견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친구들에게 사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여자화장실로 숨어들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담임 선생님에게 말을 전했는지 잠시 뒤 화장실로 찾아왔다.

벌벌 떨며 울고 있는 날 보며, 사정을 간단히 듣고는 바로 경찰을 불렀다.  


잠시 뒤 경찰이 왔고,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숨어서 경찰에게 저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신고를 받은 이상 기록(조서?)을 작성해야 한다고 일단 경찰서로 이동하자 했고, 나는 저 사람과 마주치기도 무섭다고 전하자 경찰이 먼저 아저씨를 태우고 경찰서로 이동한 후, 그 뒤를 따라 나도 다른 차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도착해서도 각자 다른 방에서 조사를 받았고, 아저씨가 학교 행사까지 나를 찾으러 온 것은 사과하기 위한 것이라고 경찰에게 말했다고 했다.

스토커에 관한 처벌을 원했으나, 역시나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처벌은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과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각서를 쓰게 했다. 한 번 더 내 앞에 나타나면 스토커 행위로 간주해 처벌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어떻게 체육제 장소까지 나타났는지 의문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학교까지 찾아갔다가, 학생들이 없어서 청소하시던 분에게 학생들 다 어디 갔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이 알려줘서 찾아오게 되었다고. 그 이후로 학교에 공지가 붙었다. 아무한테나 학교 행사 정보를 알리지 말라고.)

그 날 이후로 그 이상한 아저씨와 엮인 일은 없었다.


알고 봤더니, 내가 그렇게 나간 후에 13년이나 일한 그 아저씨가 가게에서 잘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아저씨가 없으니 나보고 다시 일해달라 해서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직원과 동급의 월급을 받던 내가 아르바이트로 강등이 되고, 5시부터 일했던 것도 7시부터 일하도록 했다. (유학생은 일주일에 28시간 이상 일하면 법에 걸리는데, 그 점을 들어 아저씨가 사장에게 협박을 했는가 보다. 신고하겠다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 학비 외에는 남는 돈이 없게 되어 더욱더 빈곤한 생활을 하며 겨우겨우 먹고살았던 기억이 난다. 이때 일하면서 7kg이 빠졌었다. (자동 고생 다이어트. 지금은 원상 복귀되었지만 ㅋㅋ)

힘들었던 마지막 아르바이트 이야기도 여기서 끝이다.




취업하기 전까지 일하면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지만, 힘든 가운데 좋은 일도 있었다. 그것은...


내가 다시 가게로 돌아간 후, 얼마 뒤에 사장 지인의 소개로 한 청년이 일하러 들어왔다.

그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남자 친구..^^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이 곳에서 이어집니다...

5년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사랑하고, 

2018년 4월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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