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그림: 렘브란트
내 몸은 변신 중이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처럼 자고 일어나니 바퀴벌레로 변했다는 극단적인 변신은 아니지만, 난 느끼고 있다. 내 몸의 모든 세포가 알알이 아우성치며 보내는 신호를. 우린 변신 중이라고. 그러니 각오 단단히 하라고.
각오하라는 말은 긍정적 변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를 이루는 수십만 개의 세포들은 50년 넘게 내 몸에 집단 거주했음에도 감사라고는 1도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조합을 만들어 파업을 작당하고 할 일을 게을리한다. 눈은 또렷함을 잃고 뼈는 신속함을 잃고 근육은 유연함을 잃으며 감정은 쿨함을 잃는다. 지금껏 집주인으로서 내가 제공했던 모든 관리와 서비스들은 부질없는 헛발질이 된다. 서운함과 억울함을 가득 담아 한탄을 쏟아낸다. 니들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니? 난 그저 숙주였니?
2024년 3월, 51세 생일을 맞자마자 몸은 내게 마치 선물이라는 듯 본격적인 변신을 시작했다. 그 시작은 기침감기였다. 멈추지 않는 기침에 잠을 잘 수 없었고 누우면 심해지는 기침에 허리가 부서지게 아파도 앉아 있어야 했다. 제 할 일을 거부하는 약과 불러도 대답 없는 의사와 도와줄 의향이 전혀 없는 네덜란드의 날씨는 내 회복력을 더디게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날 녹다운시킨 건 감기 증상이 아니라 뜬금없이 등장한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이었다. 작은 콧바람에도 속절없이 날아가는 깃털처럼 공중을 둥둥 유영하는, 뱃멀미에 버금가는 그 느낌이라니! 도대체 내 몸이 왜 이러지? 고질적인 내 저혈압 때문인가? 이석증인가? 커피를 끊어서인가? 최근 했던 강도 높은 운동 때문인가? 원인을 찾아 별의별 가설을 들이밀었으나 점점 결론은 하나로 좁혀졌고, 결국 난 인정해야 했다. 슬프게도, 아주 슬프게도 드디어 그것이 왔음을. 막연히 기다렸던 불청객에게 난 말했다. 왔니? 빈손으로 오지 뭘 이런 걸 들고 왔니?
난 지금 ‘갱년기’를 말하고 있다. 세상에, 갱년기라니! 엉거주춤하는 사이 세월이 흘러 어느덧 ‘질병 또는 노화에 의해 난소기능이 감소하면서 완경과 관련된 신체 및 심리적 변화를 겪는 시기’라는 사전적 정의의 이 단어를 직면하게 되다니! 그동안 갱년기는 그저 어르신 대상의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단골로 소비되는 아이템일 뿐이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는’ 몸뚱어리는 오만한 법. 필연적인 신체 변화를 추상적으로만 알 뿐 실질적인 준비에는 게으르고 소홀했다. 그저 영양제 몇 알과 달리기 몇 번이면 될 줄 알았지. 내 몸을 과신한 어리석음이 창피해서 괜히 원망의 화살을 외부로 돌린다. 그동안 왜 아무도 갱년기의 무서움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거지? 왜?! 단언하는데, 나 같은 사람 많을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미리 준비하는 자여! 당신이 진정한 승리자다!
일제 강점 시대에 특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가 순국하신 도시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행정 수도 헤이그(The Hague)에는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란 미술관이 있다. 작지만 알찬 이 미술관에는 그 유명한 베르메르(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있지만, 젊은 날의 부귀영화와는 달리 무일푼으로 쓸쓸하게 말년을 맞이한 화가의 자화상도 있다. 바로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Rembrandt). 그는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긴 걸로 유명하다. 초상화를 연구하기 위해 시작한 자화상은 자신을 성찰하고 화가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기 위한 도구로 발전되었는데, 청년, 중년, 노년의 시기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초상화 화가로 한참 명성을 날린 젊은 시절의 자화상(‘34세의 자화상’)에서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슈퍼스타 특유의 ‘스웩’, 즉 자신감과 건방짐이 그대로 느껴지는 반면 아내와 자녀, 재산 및 명성을 모두 잃은 말년의 자화상(‘64세의 자화상’)에서는 그가 경험한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에 대한 관조와 성찰이 느껴진다. 렘브란트는 그림으로 자서전을 썼다.
서릿발 같던 어지럼증이 한풀 그 기세를 꺾고 휴지기에 들어가 겨우 한숨 돌리던 어느 날, 난 딸아이의 만기 된 한국 여권을 갱신하기 위해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는 헤이그로 향했다. 갱신 신청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모처럼 나선 먼 길이 아쉬워졌다. 난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고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맛집을 검색해 평소 먹고 싶던 일본 라멘도 맛있게 먹고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큰 건물도 구경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마우리츠하위스에 들렸다. 왠지 그 얼굴이 어지럼증으로 고생했던 나를 위로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관람객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앞에 모여 셀카 찍기에 바쁠 때 난 내가 보고 싶었던 바로 그 얼굴, 63세의 렘브란트 자화상 앞에 섰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겸손하게 두 손을 모은 채 늙고 지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는 렘브란트. 이 늙은 화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나처럼 살지 말라고? 젊은 날의 성공은 다 부질없다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바로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통탄의 표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결연함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내게 많은 얘기를 건네고 있었다. 63세의 내 자화상을 상상해 보았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다. 갑자기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를 꼭 안아주고 싶어졌다. ‘고생하셨어요’라고 속삭이고 싶어졌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이는 그를 상상했다.
‘슬기로운 갱년기 극복법’ 같은 걸 말하는 건 식상하다. 건강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여유로운 마음 같은 뻔한 답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런 고리타분한 결론을 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한 시절 화끈하게 불태웠던 젊은 날의 내 몸을 수고했다 토닥이며 따뜻하게 안아주고 기쁘게 보내주는 태도다. 그리고 지금 내 몸이 추구하는 변신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사이좋게 공생할 방법을 찾는 자세다. 렘브란트가 자화상으로 그랬듯이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난 예술가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세계 10대 현대 미술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2025년 올해 88세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93세고,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는 96세다. 97세인 알렉스 카츠(Alex Katz)는 재작년 뉴욕 구겐하임 뮤지움에서 대형 회고전을 열었다. 2023년 말에 별세하신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도 92세였다. 새삼 노년의 예술가들이 보석 같다. 이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앞서 힘든 길을 걸어간 예술적 표본이 동시대에 멈추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자극인가. 막 시작된 갱년기 증상에 세상 종말을 맞은 듯 온갖 호들갑을 떠는 내게 그들은 둔중하게 작품으로 말한다. 적당히 하고 정신 차리라고. 63세의 네 자화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닥치고 네 할 일 하라고.
렘브란트와 나눈 대화를 소중히 품고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던 그때,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에서는 행위예술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특별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겨우내 침잠했던 생물들이 싱싱하게 변신하는 그 봄에, 내 몸도 싱싱하게 변하길 바라며 늦기 전에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78세의 그녀가 남성 중심의 예술 바닥에서 꿋꿋이 버티며 지금까지 해온 변신들이 내게 어떤 말을 건넬지 궁금했다. 잘 받아쓰기 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흔들릴 때마다 꺼내 봐야지. 그렇게 예술이 있어, 예술가들이 있어 내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