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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낱말: 사랑

반 고흐의 '밀집모자를 쓴 자화상'

by Yellow Duck Mar 28. 2025

네덜란드에 살고 있으니 한 번쯤은 반 고흐의 그림에 관해 써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 혹은 의무를 느낀다. 모두가 알다시피 반 고흐는 렘브란트와 더불어 네덜란드가 배출한 대표 화가니까. 네덜란드 관광 산업을 먹여 살리다시피 하는, 명실공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가장 사랑받는 화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전 세계로부터 매년 근 200만 명의 관광객이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을 찾는다. 반 고흐 미술관은 200여 점의 회화, 500여 점의 소묘, 750여 점의 개인 기록 등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다. ‘고흐의 방’,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등의 대표작이 이곳에 있다. 


반 고흐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사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림에 크게 반응하거나 감동한 적이 없다. 고흐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친구가 타박할 때도 오히려 고흐와 잠시 창작 활동을 했던 폴 고갱(Paul Gaugain 1848~1903)의 그림이 더 좋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덕지덕지 쌓은 물감과 휘몰아치는 붓 터치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표현하는 고흐의 그림은 내게 다소 부담스럽고 과잉으로 다가온다고, 그래서 고흐에 버금가는 강렬한 색채를 뽐내면서도 훨씬 정돈되고 논리적인 고갱의 그림이 더 좋다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에서 산 지 4년이 넘었음에도 난 딱 한 번만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때도 고흐 그림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고갱의 그림을 보며 다시 확인했을 뿐. 역시 난 고흐보다는 고갱이야. 


얼마 전 네덜란드로 여행 온 친구가 필수 코스인 반 고흐 미술관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얼씨구나 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였다. 그래도 소도시 아줌마가 대도시 바람을 쐴 구실로는 딱이었고, 또 다행히 뮤지움 카드(연비 75유로로 네덜란드 뮤지움 다수를 무료 방문할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었기에 순순히 동행에 응했다. 그리고 그 동행에서 의외의 경험을 했다. 예술은 경험하는 그 순간의 상황과 환경, 감정에 따라 그동안 쌓았던 인식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힘이 있다. 


그림의 제목은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이었다. 환희에 젖어 감상하는 친구를 감흥 없이 따라가다 문득 보게 된 이 자화상. 거기에서 난 남편을 보았다. 밀짚모자를 쓴 채 고개를 살짝 돌리고, 약간의 광기를 머금은 눈으로 단호하게 관람자를 바라보는 반 고흐의 얼굴에서 말이다. 난 깜짝 놀라 빨리 다음 전시실로 가자고 팔을 당기는 친구에게 ‘잠깐만’을 외치며 한동안 그림 앞에 머물렀다. 친구는 날 두고 앞서갔고, 난 그림을 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 


남편은 오랫동안 치통에 시달렸다. 윗니 왼쪽, 치아 번호 25번, 딱 이 한 곳에서 원인 모를 치통이 그를 괴롭혔고, 괴롭히는 중이다. 조짐을 보인 게 2010년이었으니, 근 14년의 세월이 지났다는 게,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게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동안 수많은 의사를 거쳤으나 아무도 원인을 찾지 못했고, 고로 치료도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통증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만큼의 통증은 아니지만 마치 작은 물방울이 바위의 한 곳에 오랜 시간 똑똑 떨어져 구멍을 내고 결국 깨뜨리고 마는 그런 종류의 통증이라고 설명한다. 치통의 경험이 없는 난 당연히 그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그가 말하는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통증이란 게, 경상도 방언으로 ‘우리~하다’라는 말로밖에 표현 안 되는 통증이란 게 무엇인지, 그래서 그 통증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일상과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저 아프다니까 받아줄 뿐. 어쩔 거야. 아프다는데. 


시와 소설을 쓰는 남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치통 때문에 집중력과 정신이 흐려져 원하는 글을 쓸 수 없다고 호소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좌절하고, 걸러지지 않은 언어가 여러 형태로 쏟아져 나온다. 고통을 표현하는 그의 모습은 해도 해도 적응 못 할 월요일 아침의 출근 시간 같다. 육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아픈 걸 안으로 삼키는 성향의 내 눈에는 자신의 고통을 가감 없이 밖으로 표출하는 남편의 표현법이 미성숙하고 치기 어려 보인다. 아픈 사람을 지켜보는 건 괴롭다. 아픈 사람을 꾸준히 사랑하는 건 어렵다. 오랜 시간 지속된 그의 아픔은 종종 ‘또 시작이네’란 익숙함으로 취급되고, 신의 손을 가진 명의를 만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기에 그의 표현법에 반응하는 내 정당한 분노는 쉽게 우스워진다. 싸울 때마다 그가 먼저 내미는 화해의 손은 머쓱해지고 달라지지 않는 본질에 한숨 쉬며 난 점점 쪼잔해진다. 


하지만 가끔, 침대에서 끙끙대다 겨우 거실로 나와 커피를 내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혹시 내가 이 양반에게 ‘우아하게 아프기’를 요구하나? 물밑에서는 오두방정 발을 떨지언정 물 위로는 시치미 뚝 떼고 유영하는 백조 같은, 그런 형용모순을 바라나? 내가 아팠을 때 난 고상했던가. 허리에 담이 와서 바닥에 떨어진 연필 하나 제대로 못 주울 때, 승무처럼 다소곳이 무릎 꿇고 부드럽게 손을 뻗어 궁극의 나빌레라를 발산했던가. 인간이 고통을 감당하는 각은 삼각형, 사각형, 팔각형 등 실로 다양할 텐데, 난 이 양반에게 몇 각형이 되기를 요구하는가. 각이 무한대로 늘어나 동그라미가 되기를 바라는가. 남편을 향한 내 사랑은 몇 각형인가. 


반 고흐의 얼굴과 남편의 얼굴이 겹친 이유를 생각한다.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귀를 잘라 신문지로 싸서 한 여성에게 주었다는 유명한 일화처럼, 당장이라도 귀를 자를 듯한 광기 어린 고흐의 눈빛이 고통을 호소하는 남편의 그것과 닮아서일까. 배경에 무심히 툭툭 흩어져 있는 파란색 붓 터치가 고흐와 남편, 두 사람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것 같아서일까. 그럼에도 결연히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즉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를 계속하겠다는 두 사람의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일까. 종종 왼쪽 턱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런던의 코탈트 갤러리(The Courtauld Gallery)에 있다는 <귀를 자른 후의 자화상>을 보기 위해 런던으로 날아가고 싶다. 그 그림이 남편을 대변할 것 같아서. 귀를 자른 고흐를 이해하면 남편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사랑을 더 단단히 다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은밀한 개인사에 예술이 불쑥 들어올 때 눈은 새로운 시력과 시야를 가진다. 고흐의 그림을 보며 내 사랑을 가늠하게 될 줄이야. 고흐는 약 10년 남짓한 활동 기간 동안 유화 900여 점, 스케치 1,000여 점 등 엄청난 숫자의 그림을 남겼다. 정신질환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처럼, 치통과 싸우면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완벽히 닮은 고흐의 얼굴을 보며 내 마음이 변한다. 이제 고흐의 그림이 달라 보일 것이다. <해바라기> 그림 앞에 있을 게 분명할 친구를 찾아 2층으로 올라가며, 앞으로 남편이 ‘웬수’ 같을 때마다 이 자화상을 보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남편 얘기를 공개적으로 쓴 게 미안하여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도 가차 없이 글감으로 쓰는 내 작가 자의식에 혀를 끌끌 차지만, 대중이여, 알아주소서! 이 글은 남편을 향한 내 사랑을 가득 담은 러브레터라는 걸!)


<밀집모자를 쓴 자화상><밀집모자를 쓴 자화상>


반 고흐 뮤지움반 고흐 뮤지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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