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결 Jun 01. 2021

아빠, 나 잘하죠?

매일 글쓰기

캠핑 마지막 날,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제부에게. 아빠 난실에 자동으로 문을 열고 닫는 게 잘 안된다고 와서 좀 봐주면 안 되냐고 했다.


땡볕에 캠핑 장비들을 접고 그 짐들을 다 싣고 다 같이 아빠 집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캠핑장에서 우리 집까지는 30분이 채 안 걸리는데 캠핑장에서 아빠 집까지는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동생이랑 의논해서 일단 집에 가서 짐을 풀어놓고 나와 여동생 둘만 가기로 했다. 제부는 상황을 들어본 후 간단한 일이라 내가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우리 아빠 일이니 우리가 가는 게 맘 편했다. 내가 이래 봬도 기계공학부 아니었던가. 비록 실전 경험은 없지만 들어보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두리번거렸다. 둘만 왔다고 하니 아빠가 헛웃음을 지으셨다. 네가 와서 뭐하냐, 그러려면 내가 했지, 라는 말과 함께.


그러거나 말거나 난실로 향했다. 아빠는 증상을 말하는 내내 강한 불신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말해봤자 헛수고라는 표정으로 자꾸 한숨을 쉬었다. 처음 해보는 거라 일단 제부한테 들은 대로 아빠한테 작동을 시켜보라고 했다.

 

아빠는 내 말대로 움직이긴 했다. 작동을 하는 내내 '이게 아니다, 이해를 못하니.'를 반복하긴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기계가 작동되는 원리를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몇 번 작동시켜보니 어떤 시스템인지 파악이 됐다. 전공 공부를 헛한 건 아니군 하는 생각에 스스로 조금 뿌듯.


다행히 창문이 위아래 두 개가 있었고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밑에 창문을 작동시켜보면서 차이점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빠한테 얘기하니 첨엔 내 말 자체를 안 들었다. 아빠를 가까이 오게 해서 실제로 작동하는 걸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그러니 아빠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아빠도 시스템을 이해한 거다. 아빠의 '그런가?'라는 말을 시작으로 일은 진척이 있었고 결국 이상했던 점을 바꿔보니 정상 작동을 했다.


상황이 해결되자 자꾸 화를 내던 아빠의 표정가 미안한 듯 자꾸 웃었다. 처음부터 지켜보던 여동생은 내가 놀랍다고 했다. 아빠가 그렇게 버럭버럭 하는데 어떻게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그렇게 대화를 하냐고. 글쎄. 뭐 내가 기계 전공했다고 집에 기계를 만진 것도 아니었으니 아빠의 불신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건 일하는 현장에서도 많이 겪었던 일이었다. 게다가 아빠는 뇌출혈로 인해 오른쪽 손이 자유롭지 않고 단어도 잘 생각이 안 나 무얼 설명할 때 힘들어하셨다. 그러니 그런 반응은 아빠니까, 내게 그럴 수도 있다는 이해의 허용범위 안이었다고 할까?


엄마가 수고했다고 소고기를 사준다고 했다. 고기를 먹는 내내 여동생은 아빠의 말투와 태도 변화 등을 얘기하며 아빠를 놀렸고 아빠는 내내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이번 일로 아빠는 내가 무얼 전공했는지 조금 더 인식한 것 같다. 실질적인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식을 머리에 품고 있으니 이럴 때 써먹기도 하기는 구나. 그동안 아빠의 일들에 신경을 안 썼는데 조금 더 노력을 해야곘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 이젠 내가 좀 더 도와줄게요!!


작가의 이전글 캠핑장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