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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수 Oct 28. 2020

여름 09

2020년 9월 15일









 어디로 가나

 홀로 선을 그으며

 흔들리는 빛




 한동안 우물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 일을 나가지 못하고 집 밖에도 나가지 않다 보니 점점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언제쯤 이 코로나가 안정이 될까... 핸드폰으로도 책상 위의 컴퓨터로도 항상 뉴스를 먼저 확인하게 되더군요. 기사를 읽고 또 읽고 새로고침까지 해서 읽게 되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릴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몸에서 신호가 왔습니다. 책상 위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현기증이 나더군요. 온몸에 힘이 쫙 빠져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아무래도 계속 이렇게 지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마트에 가서 장부터 봤습니다. 밥도 짓고 찌개도 끓이고 카레도 만들고 우선 잘 먹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으니 스트레칭도 하고, 저녁 이후엔 산책을 하러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막 현관 앞을 나서는데 초록빛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반딧불이였습니다. 제주에는 주로 오름이나 곶자왈에서 초여름에 반딧불이를 볼 수 있지만, 늦여름에는 좀 더 멀리까지 반딧불이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집 앞에서 바로 보는 것은 저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신기해서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처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변 풀숲에서는 이렇게 무수한 벌레들이 함께 울고 있는데, 어찌 이 친구는 이리도 홀로 헤매고 있을까... 풀벌레와 반딧불이, 이 둘의 상황 자체가 참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변가를 걸으며 캠핑을 하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 곁을 스쳐 지나가며 혼자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다시 한번 홀로 선을 그으며 흔들리던 그 빛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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