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정형외과 단골손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
TMI를 하나 방출하자면, 나는 정형외과 단골손님이다.
처음 정형외과를 간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근처 산으로 소풍을 갔는데,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던 중 발을 잘못 디뎌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7살에 처음 경험한 정형외과.
그때의 찌릿함(짜릿함 아니다. 찌릿함)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서른 살 현재, 발목은 물론 허리-목, 그리고 손목까지. 몸의 온 뼈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몸뚱이 덕분에 정형외과 단골손님이 되고 말았다. 이사를 가면 집과 가까우면서 후기가 좋은 정형외과를 찾는다.
자신의 존재감을 열심히 드러내는 내 뼈들 중, 요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손목이다.
나는 미대생이었다. 특히 일러스트에 관심이 많아 하루종일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취미는 글쓰기.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패션 기자가 됐다. 쉴 새 없이 타자를 쳤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하루 12시간 이상 잡고 있었다. 여유 시간에는 테니스와 그림 그리기, 필사, 일기와 다이어리 쓰기를 즐긴다. 나의 오른 손목은 자는 시간 외에는 쉴틈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손목에서 뚝하는 느낌이 났다. 사실 손목 통증은 고3 때부터 갖고 있었던 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뚝'은 달랐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손목터널증후군이네요. 당분간 손목 사용을 최소화하셔야 합니다"
의사는 말했다.
손가락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손목 사용을 최소화하라니. 심지어 난 손글씨 덕후인데? 그건 마치 커피 애호가에게 카페인을 끊으라는 말처럼 잔인하다.
글씨를 잘 쓰진 못하지만,
나는 다이어리도 내가 원하는 구성으로 만들어 쓰는 불렛저널을 쓸 정도로 손글씨를 사랑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닝 저널을 쓰고, 일상에서는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자기 전에는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내용들을 다이어리에 기록하며 힐링한다. 손목이 조금 저릿해져도 펜을 잡는 손가락 위치를 살짝 바꿔 다시 쓰기 시작한다.
손목터널증후군을 앓기 시작한 지 어느새 7년. 지금은 손목을 넘어 팔꿈치, 어깨까지 아플 때가 있지만 손글씨를 끊을 수는 없다. 대신 매주 충격파와 도수치료를 받고, 가끔은 '테일러 스위프트식 펜 잡기' 방법을 쓰기도 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식 펜 잡기는 손에 무리가 가지 않지만 글씨가 예쁘게 써지지 않는다. 그래도 쓰다 보면 손에 익어서 적응이 된다. 매번 이렇게 잡는 건 아니고 손목이 아픈 날 가끔 쓰는 방식이다.
손목터널증후군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건 마치 까다로운 룸메이트와 지내는 것과 비슷하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 나는 여전히 손글씨를 쓴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신중하게.
의사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는 여전히 손글씨를 씁니다. 다만 이제는 손목터널증후군이라는 까다로운 편집장의 검열을 거치면서요. 그래도 괜찮아요. 어차피 인생이란 게 이런 거니까요. 좋아하는 것들과 한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쓴다. 손목이 아파올 때면 잠시 쉬었다가, 도수치료 선생님께 배운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펜을 잡는다. 오늘 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해야겠다.
"사랑하는 나의 오른 손목에게. 오늘도 고생했다. 내일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