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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삭 Aug 07. 2024

에필로그

여행은 항상 삼 세 번



대학시절 제일 좋아했던 프랑스어 교수님이 있다. 교수님 강의의 매력은 평균 4할 이상, 심할 때는 8할 이상에 달하는 교수님의 잡담이었다. 프랑스어 언어와 전혀 관계가 없을 때도 많았던 삶, 영화, 음악, 역사, 예능 등 온갖 장르를 망라하는 교수님 잡담에 낄낄 웃다가 보면 한 학기가 지나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여행 이야기를 좋아하셨다. 교수님께서는 여행은 항상 세 번을 떠나는 것이라고 하셨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한 번, 실제로 물리적으로 여행지에서 한 번, 다녀오고 나서 돌아보면서 한 번.


유럽으로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마음 한편에 항상 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있었다. 제대로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지냈다. 그 방법을 고민하다 철학가 니체의 말을 떠올렸다. 니체는 그저 세상을 관찰하고 체험하는 여행자들보다 체험한 것을 내면으로 가져와 간직하는 여행자를 높이 평가했고,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자기 안에서 부화하여 그 깨달음 대로 살아가거나 작품으로 담는 여행자를 더 높이 평가했다. 나 또한 성찰과 숙고를 통해 여행의 기억을 녹여내고,  작품으로 정제하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킨 후, 그것을 매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으로 살아내는 것이 나에게 남은 세 번째 여행이라 생각했다.


수년간 많은 여행지를 다니며 나름 여행의 공력이 제법 쌓였다고 자부하지만, 세 번째 여행에 대해서는 영락없는 초보다. 아직도 내 모자란 글과 생각으로 이해되거나 표현되지 못한 체험들이 많고 끝내 실천으로 다 옮기지 못한 깨달음들이 많다. 아마 이 세 번째 여행이 완전히 종착지에 이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꾸준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일상을 대하는 나의 방식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태도가 하나 있다. '나는 돌이킬 수 없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축복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것이다. 당장은 나의 의도와 바람과는 상관없이 괴롭고 황폐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질 때에도, 이 축복을 통해 이마저도 긴 삶의 여정 중 나에게 찾아온 행운, 세런디피티(Serendiptiy) 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한층 의연하게 대할 수 있다. 한 치 앞이 내다보이지 않아 불안감이 엄습할 때에도 다가올 순간들에 대해 설렘을,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을 받기도 한다. 결국 나는 행복할 테니까.


유럽에서 처음 이런 생각을 품게 되기까지 과정을 글로 옮기며 복기하면서 많은 기운을 얻었다. 두 번째 여행을 하는 동안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묵은 생각들이 떨어져 나갔듯이, 삶이 위기에 처한듯한 한 해를 보내며 쌓여갔던 막막함과 고통이 세 번째 여행 중 위력을 많이 상실했다. 삶에 대한 충만한 행복감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사랑하는 와이프가 이 모든 여정을 함께 해주었다. 와이프는 항상 훌륭한 동반자였다. 세 번째 여행에서도 그랬다. 초고에 어줍지 않은 글욕심에 불필요한 내용을 덕지덕지 붙이거나, 내 생각이 아닌 진실되지 않은 말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들춰주었다. 덕분에 더 진실된 말들을 찾고, 글 속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타지에서 여러 잦은 부상과 잔병에 시달릴 때에도 유약하기만 한 남편을 항상 정성껏 보살펴주었고, 내면을 여행하며 불안과 혼란에 시달릴 때에도 와이프가 손을 잡고 함께 해주었다. 와이프와 함께였기에 항상 더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함께 하는 모든 생의 순간들에 대해서 늘 감사하지만, 여기에 한 번 더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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