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다 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 그 말은 나도 알겠다.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성은 이미 한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너 내 말 알아듣겠냐?"
-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가 한 말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오랫동안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가 누군인지,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작품을 읽으면서 나도 함께 고도를 기다렸다. 하지만 슬프게도 고도는 오지 않았다. 내일, 내일 올 거라는 소식만 귀여운 소년을 통해 계속 전달받았을 뿐이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함께 내일을 기다리는 것으로 끝이 나는 작품이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둘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끊임없이 말을 한다. 아니, 수다를 떤다. 약간은 허무적인, 약간은 비관적인, 약간은 해학적인 수다. 거기에 포조와 럭키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등장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더 많은 수다, 더 이야기가 오고 갈 뿐이다. 딱히 대화라고 할 수 없는 어떤 것들.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톤으로 이야기하는 책,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끝까지 숨긴 책이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처음 읽을 때는 "이 사람들, 뭐 하는 거지?","작가의 의도는 뭐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맥락도 없는 듯한, 그저 시간을 때우는 부랑자들의 대화가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덮으려고 할 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막막함'과 '실존'이라는 두 단어가 포개지면서 평생 실험적인 작품을 썼다는 사무엘 베케트가 떠올랐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의도가 이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읽고 난 후에 더 좋아진 책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부쩍 그들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남편과 나의 모습을 보면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마치 탁구공을 주고받는 느낌이다. 핑퐁게임을 하는 것처럼 이쪽에서 '툭' 던지면, 저쪽에서 받는 '툭' 식의 맥락도 없고, 의미도 불분명한 단어들이 확률과 상관없이 자유낙하를 하고 있다. 어제 아침도 그랬던 것 같다. 얼마 전에 구입한 하얀 티셔츠를 입은 남편의 얼굴이 많이 화사해 보였다. "배에 힘줘"라는 말에 배에 힘을 주면, 검은색 바지와 함께 일시적으로 근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남편에게 '툭' 말을 건넸다.
"오~~ 복학생 선배 같아 보이는데?"
남편에게서 잠깐의 망설임도 없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이 '툭' 돌아왔다.
"(웃음) 마스크가 좋기는 좋네"
툭툭.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과 함께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책상에 앉았다. 그때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생각났다. 우리의 삶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맥락도 없는, 의미도 불분명한 단어로 서로에게 웃음을 주는구나, 막막함과 실존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방식은 다양하겠구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어떤 것을, 상황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것을 기다리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기다리고 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채우고 견디고 있다. 조금 덜 지루한 방식,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해보는 말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툭툭'거리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이렇게 말이다.
"와! 오늘 왜 이렇게 예뻐 보이지?"
"와! 어떻게 이런 것도 다 알고 있어?"
"와! 정말 근사해 보여!"
by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