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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잘 못하니까 내가 잡아줄 거예요

by 윤슬작가 Jun 08. 2022

"나도 타고 싶어"

"나도 오빠들처럼 타고 싶어"


처음으로 롤러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여덟 살 조카 jh, 지난번에 왔을 때는 아예 관심을 드러내지 않아 남자아이들만 입장시켜주고 놀이터로 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예상을 빗나갔다. 조카의 머릿속에서 미끄럼틀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었다. 현란한 조명등이 조카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오빠들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놀이터에 가기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을 보며, 남편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탈 것인지, 아니 롤러스케이트를 가르칠 것인지, 아니면 조카를 잘 설득해서 밖으로 데려나갈 것인지. 하지만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남편이 조카에게 말했다.


"우리 들어가 볼까?"


롤러스케이트장을 찾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결혼하기 전 남편과 인라인 스케이트화를 구입해 몇 번 인라인을 탄 적은 있었지만 결혼 후 아이를 낳고는 아예 기억에서 잊혀졌다. 두 아이와 함께 아이스 링크장을 몇 번 찾았지만 날카로운 칼날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채, 가장자리를 붙잡고 걸음마 연습만 하다가 나온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바퀴가 네 개라고 해도 '야, 재밌겠다'라는 마음이 선뜻 올라오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두 아이 입장료를 계산할 때부터 모든 상황을 지켜봤던 주인아저씨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옛날에 롤러스케이트 타 보셨죠? 그러면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어릴 때 타봤으면 금방 재미있어 할 거예요"

"아... 예, 그렇겠죠?"



신발을 신고 초보자 코스로 기어가듯 나아갔다. 조카를 붙잡아줘야 하는데, 조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더 문제였다. 흔들흔들, 뒤뚱뒤뚱. 주인아저씨가 금방 익숙해진다고 했는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조카와 나 역시 그 뒤를 따랐다.


"jh아. 이게 단계가 있는데... 우선 두 발을 일자로 해서 앞으로 가는 게 중요해"

"고모부, 저는 걸을 때도 다리가 조금 앞으로 모여요"

"그렇지? 그런데 모이면 부딪쳐서 금방 넘어져... 일자로 가는 게 중요해"

"이렇게요?"

"그렇지!"

"고모부, 2단계는 뭐예요?"


남편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게 역력해 보였다. 유난히 궁금하게 많은 조카, 승부욕이 강한 조카는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다는 열의로 온몸이 불타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빠른 속도로 몇 단계를 구상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남편도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재빠르게 2단계가 나왔다.


" 2단계는 잘 넘어지는 거야"

"??? 잘 넘어지는 거라고요?"

"무릎을 굽혀서 넘어지고 천천히 잘 일어나는 게 중요해. 넘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야 돼"

"이렇게요?"

(철퍼덕)

"그렇지"

"이제 3단계 가르쳐주세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남편은 말로 가르쳤고, 조카는 몸을 움직였다. 나는 조카의 뒤에서 약간 거리를 유지하면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며 따라갔다. 단계는 계속 올라갔다. 양손으로 잡고 있던 것을 한 손만 잡게 했고, 한발씩 밀고 나갔다가 다시 당겨오는 것을 알려주었고, 다리가 너무 벌려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가 되면 당겨오라고 말해주었다. 남편은 공식적인지, 비공식적인지 모르지만 7단계를 완성했고, 그 덕분에 나도 7단계를 완성했다.


남편이 쉼터에 앉아 있을 동안 둘이서 가장자리를 천천히 돌았다. 마지막에는 양손을 모두 떼내고 양발을 사용해 조금씩 앞으로 밀고 나왔다. 그때그때마다 작은 목표를 세웠다. 초록색 라인을 따라가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하고, 주황색 라인을 따라 걸으면서 한 바퀴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고작 여덟 살인데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해 보였는지 모른다. 물이 마시고 싶다길래 의자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몸을 옮겼다. 조카에게서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모, 엄마한테 보여줄 거예요"

"엄마는 잘 못하니까 내가 잡아줄 거예요"

"아빠는 커서 넘어지면 내가 못 잡아주니까 아빠는 안 될 것 같아요..."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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