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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층에서 산다는 것

by 윤슬작가 Jun 13. 2022

30층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상상한 적은 없다. 사람은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야 하고, 흙을 밟고 다녀야 한다는 부모님 얘기에 최대한 땅에 붙어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1층을 원하지 않았다. 창문도 마음껏 열수 없을 것 같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곳이 5층이었다. 5층에서 신혼살림을 차렸고, 그곳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두 사람이 네 사람이 되면서 이사를 감행했다.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것, 거기에 새 아파트에 대한 로망이 뒤섞여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다. 옮겨간 집은 11층이었다. 대부분 평수가 넓은데, 우리가 가려고 하는 동이 평수가 넓지 않다 보니, 인기가 높다는 말을 신뢰하며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은 11층을 계약했다. 그때 얘기한 부동산 중개인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은 사람들이 10층 이상을 선호해요. 나중에 팔 때도 훨씬 나을 거예요"


선호도와 상관없이 남은 게 11층 밖에 없다는 말을 신뢰하며 11층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예전보다 땅에서 두 배 더 올라왔으니, 땅의 기운과 멀어졌을 거라는 걱정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살아가는 동안 '흙의 기운'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보다 흙을 보는 일보다 하늘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11층에서 10년쯤 살았을 무렵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조금씩 빗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네 개의 라이프 스타일이 등장했고,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함이 수시로 고개를 내밀었다. 새 아파트에 대한 로망도 사라진 터라 무리해서 옮길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어 다른 동네나 지역으로 이사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은 아파트 내에서 이동을 했다. 그렇게 둥지를 튼 곳이 30층이다. 이사를 다니기 위해 부동산을 찾았을 때 두 번째로 소개받은 집이다.

"30층이오?"


30층이라는 소리에 새삼스럽게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부모님 얘기가 기억이 났다.

"사람은 흙을 밟고 다녀야 돼..."

흙을 밟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귓가를 계속해서 맴돌았지만, 30층을 계약했다. 조금 더 독립적인, 무엇보다 눈앞에 아파트 건물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앞산이 보이는 것이 제일 좋았다. 매일 눈앞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상상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리모델링은 거의 하지 않았다. 청소가 귀찮아 욕조를 떼어낸 것 말고는 다른 건 손도 대지 않았다. 벽지만 교체해도 충분해 보였다. 왜냐하면 소유의 목적이 아니라 거주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만큼의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옮길 계획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인테리어에 욕심이 나지 않았다.


가끔 주변에서 30층의 생활에 대해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이야기해 준다. 우선 전망이 좋다고, 하늘이 잘 보이는 것, 하늘의 마음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것에 관해 얘기해 준다. 어른들은 바람 불고, 비 오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하시지만, 정작 생활하는 우리는 이곳이 30층인지, 11층인지 잊고 살아간다고. 대신 여름에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창문이 제법 달그락거린다. 마치 아파트 자체가 달그락 달그락거리는 느낌이다. 옥상에서 바람 때문에 팬이 돌아가는지 덜거덕 소리도 제법 들려온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치 음악이 연주되는 것처럼, 빗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반면 아주 조용한 날에는 층간 소음이 들려온다. 층간 소음이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다투는 소리, 물건이 떨어뜨린 소리,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소리까지 다양한 소리가 들려온다. 예전에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소음이 나면 위쪽에서 들려온다고. 윗집, 혹은 그 윗집, 또는 그 윗윗집. 하지만 30층에서 살고 보니, 위쪽이 아니라, 옆쪽일 수도 있고, 대각선에서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살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층간 소음과 관련해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로 속앓이를 제법 했었다. 처음은 우리 실수였다. 이사를 하고 집들이 겸 동생 가족이 놀러 왔는데 아이들만 두고 어른들끼리 밖에 나갔던 일이 문제였다. 조카들이 뛰어다녔던 모양이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갔는데 곧바로 누군가 벨을 눌렀다. 너무 시끄러워서 올라왔다고. 미안한 마음에 죄송하다는 얘기를 하고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늦게 퇴근하는데다가 중학생, 고등학생밖에 없는 우리 집에 시간과 상관없이 계속 벨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집에서 운동하시냐고, 급기야 나중에는 우리 집은 아닌 것 같은데 확인을 해본다면서 올라왔다.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다섯은 찾아온 것 같다. 30층이라는 이유로, 맨 꼭대기에 있다는 이유로.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관리 사무실을 찾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매뉴얼에 대한 안내를 받았는지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사라졌지만 요즘도 한 번씩 애들도 없는 상태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면 순간적으로 멈칫하게 된다. '이거 또 우리 집에서 소리 내는 줄 알고 달려오는 거 아니야?'라고.


사실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30층에 산다는 것에 대한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눈앞에 산이 보이는 것은 상당히 큰 즐거움이다. 가끔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 자연이 건네는 말투가 제법 거칠기는 하지만, 맑은 날도 있으면 궂은 날도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며 어깨를 한번 으쓱 거리며 넘기고 있다. 당분간 하늘을 가까이에서 보는 시간을 실컷 가질 계획이다. 그러다가 땅을 밟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때 다시 길을 나서볼 계획이다. 5층에서 11층, 30층으로 온 것처럼, 마음이 동할 때 새로운 길을 찾아볼 생각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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