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케이크를 불었다. 힘차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이 큰 박수 소리로 새어 나왔다. 한밤중에 그렇게 크게 손뼉을 치면 어떻게 하냐는 큰 아이의 핀잔을 들어야만 했던 시각은 밤 12시 30분이었다. 다행히 둘째도 시험 기간을 맞이해 학원 숙제가 밀려 있던 터라 잠들지 않은 시각, 아주 이른 시각에 생일 축하를 받았다. 아침 6시 50분에는 축하를 받아본 적은 있는데, 새벽은 처음이다. 케이크를 불고 곧바로 잠이 들것 같았는데,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학교 얘기, 시험 얘기, 인생 이야기까지. 잠깐이었지만 가족의 얼굴을 바라봤던 그 시각, 나는 '이게 행복이지'라는 감정을 경험했다.
고등학교 2학년은 별 보기 운동에 동참한다고 바쁘다. 시험 기간이 겹치면서 얼굴에 다크서클이 가득하다. 중학교 2학년은 자신의 세계에 푹 빠지고 싶은데, 기말고사에 발목이 잡혔다며 수시로 인생의 슬픔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고 있는데,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업이 들쑥날쑥한 데다가 저녁이나 주말에 일이 있는 나, 그나마 가장 일관성 있는 패턴을 가진 남편까지. 4명이 살고 있지만, 4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생일 풍경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생일상이 중요했고, 생일 선물이 중요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잠깐이라도 함께 얼굴을 보고, 오늘이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공유한다는 데에 더 큰 의의를 두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틀'이라는 것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몸에 장착한 '이래야 한다'라는 것이 상당했는데, 약간은 유연해진 느낌이다. 항상 내가 원하는, 예측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누군가가 정해준, 혹은 나도 모르게 습득한 질서가 주는 안정감이 좋았지만, 예상이 빗나가는 일이 생겨났고, 마냥 순응하고 따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상황을 두고 혼돈이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몇 차례 그런 환경을 마주하면서 생각과 감정에 변화가 찾아왔다. 문제 상황을 차단하겠다는 생각보다 문제라고 여겨질 상황은 생겨날 수 있으며, 그것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고.
다른 많은 일처럼 생일도 그 연장선에서 바라본 것 같다. 미역국 한 그릇이면 충분했고, 이른 시각이라도 소중한 가족의 얼굴을 보며 축하 인사를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4개의 세계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적당한 의심도 필요해 보인다. 정말 '뭣이 중헌디?'인 것 같다. 딱히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만 순간을 잘 살아내는 것, 아름다운 찰나를 공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는 소중해, 그리고 이 순간이 감사해'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 'only one'이 아닐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