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풍경이 20분째 눈앞에서 펼쳐졌다.
모임이 있어 퇴근 시간 운전대를 잡은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어쩌면'이라는 의심을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그쪽으로 발을 디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들이라 어떻게든 통과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비게이션은 계명대학교로 향하는 정식 루트를 소개했지만, 지름길을 알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과감하게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퇴근 시간이긴 해도 평소 2,3분이면 지나갔던 곳이라 그래봤자 5분이겠지라며 차를 굴다리로 몰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만 알고 있다는 생각과 퇴근 시간에 그리로 차가 많이 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멀리 굴다리가 보였고, 반대 차선에는 굴다리에서부터 나를 향해 끝없이 이어진 차량 행렬이 보였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아주 무심하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다들 퇴근하는 모양이네'
굴다리 앞으로 다가가니 회색빛의 소나타가 한 대 대기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차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뒤에 잠시 차를 세웠다. 그리고 기다렸다. 반대편에서 차가 들어오지 않기를. 이번 행렬이 끝나면 괜찮아지겠지. 계속해서 연달아 10대, 20대가 내 곁을 스쳐갔고, 신호에 걸려있던 반대차선의 차들이 줄줄이 빠져나갔다. 왜 굴다리에는 신호등이 없을까, 뭔가가 속에서 부글거리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15분을 기다린 것을 두고 인내심이 있다고 말해야 할까.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내 뒤에 붙은 두 대의 차량은 또 어떻게 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사방이 꽉 막힌 느낌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주변을 살피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미는 차량이 안 보였다. 반대편에 차량이 줄어든 것이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됐어. 저 하얀 suv만 지나고 나면 우리 쪽에서 들어가면 되겠어'
'어서 와. 어서. 빨리'
어떤 이유에서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만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만큼 기다렸으면 기회가 오는 게 정상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들어오지 않겠지. 그래, 양심이 있으면'
하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반대편에서 검은색 차량과 갈색 차량이 번갈아가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미는 게 아닌가. 그 모습에 황급히 놀란 쪽은 나였을까, 아니면 반대편 차들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다음에 벌어진 풍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두 대 모두 막차를 발견한 사람처럼 정말 안간힘을 다해 꼬리를 물고 달려 들어오는데, 진짜 '이건 아니지.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잖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급하게 창문을 올렸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것을 드러내놓고 자랑할수는 없으니.
검은색과 갈색 차량 뒤에 줄줄이 비엔나가 되어 따라오는 차량들, 어디에서도 미안함이나 조심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이쪽에서 하릴없는 사람처럼 20분, 그 이상을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 것인가. 그런데 더 속 터지는 일이 생겼다. 검은색 차량이 창문을 내린 채 옆으로 지나가면서 말을 건네왔다. 모든 사람들이 다 들릴만큼 큰 목소리로.
"back 해! back 해"
"못 가. 못 가!"
놀렸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제안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복잡한 감정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하지?'
'차에서 내려 반대편에 가서 오지 말라고 할까?'
'반대쪽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그다음은 어떻게 연결하지?'
아주 잠깐이지만 그 순간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앞에 있던 소나타의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렸다. 그러고는 화난 발걸음으로 성킁성큼 걸어왔다.나는 창문을 내렸다.
"어? 아줌마네?"
'네? 네... 나 아줌마였지...'
아줌마라는 소리에 잠시 당황한 것은 비밀이다.
하긴 눈앞에서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기는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네. 말씀하세요"
"아줌마, 아무래도 차를 막아야 할 것 같아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내가 저기 가서 차 막을게. 그런 다음 들어오고, 내 차가 들어올 때까지 거기서 가지 말고 서 있어요"
"네. 가서 서 있을게요"
"가지 말고 기다려야 해요.꼭"
"네. 그럴게요. 꼭!"
상황은 그때 종료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분이 차를 막고 서 있는 동안, 나는 반대편 굴다리로 차를 몰았고, 반대편에 도착했을 때 비상 깜빡이를 켜놓고 기다렸다. 소나타가 출발해 굴다리에 진입해서 꼬리를 물은 것을 확인할 때까지.
아직 20분정도 더 남았기 때문에 혼자 만의 생각을 하기엔 좋았던 것 같다. 아주 잠깐의 일이었지만 굴다리 사건을 계기로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었다는 것. 그런데 이번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반대편에서 진입한 차량처럼 꼬리를 물어 어떻게든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반대쪽에서 5분을 기다렸는지, 10분을 기다렸는지 관심도 가지 않았고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또 하나의 관점을 얻게 되었다.
'맞아 . 모든 일에는 양심이 필요한데. 그걸 놓쳤네. 양심良心이 아니라 양심兩心 말이야'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