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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Nov 21. 2020

법정에 선 돼지

소설_단편

      “돼지도 눈 떴는데 대통령은 뭐 하고 있나!”

     굵은 목소리가 확성기를 지나 마른하늘 위로 뻗쳐 나가더니 햇빛을 타고 수많은 사람 위로 쏟아져 내린다. 그곳엔 각기 다른 색깔이 세를 겨루듯 똘똘 뭉쳐있다. 너도나도 제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힘껏 소리를 지르는 중이다. 이들의 발악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건 빽빽이 늘어선 경찰들이다. 그들은 귀가 아픈 건지 얼굴을 찡그리며 이따금 손을 귀로 가져가고 시위자들은 보란 듯이 그 틈을 향해 목청을 높인다. 서로 앙금이 있는 사이 같다.

     시위 현장 뒤에선 리포터가 카메라 앞에서 뉴스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노랑머리, 파란 눈, 검은색 피부 등의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있는 만큼 여러 언어가 중구난방으로 뒤섞인다.

     “안녕하세요. SBX 뉴스 리포터 안예나입니다. 오늘의 재판은 전 세계가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는 만큼 특별한데요. 서욱대학교 부속 연구소 실장 김 모 씨가 현재 돼지 주인 이 모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잠시 후 법정에서는 돼지의 법적 대리인 자격을 놓고 뜨거운 공판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아! 저기 오늘의 주인공 돼지가 법정 안으로 이송되고 있습니다…….”

     돼지의 울음소리가 이동식 철장에 달린 바퀴 구르는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괴이한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뒤이어 재판 당사자들도 벌떼 같은 기자들을 물리치며 법정 안으로 들어간다.


     법정 안은 카메라 각을 조정하는 사람들, 뭔가를 써 내리는 사람들도 북적거린다. 재잘대는 목소리와 이것저것 부스럭거리는 소음이 법정 안을 마구 흔들지만, 재판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한껏 늘어졌던 법정 안의 공기는 이윽고 제 무게감을 찾는다. 

     “원고 측 변호인부터 시작하세요”

     재판장이 무거워 보이는 입을 뗀다. 그리고 원고 측 변호인이 베테랑인 만큼 여유 있게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의 시작을 알린다.

     “네. 그럼 원고의 변호를 시작하겠습니다. 원고는 서욱 대학교 부속 연구소 동물 인지 담당 연구 실장입니다. 그는 작년 5월경 대학 후배 박 모 씨로부터 연락 한 통을 받게 됩니다. 돼지의 종합 검진 의뢰였습니다. 그 무렵 피고는 트럭에 치여 피투성이가 된 돼지를 박 모 씨가 운영하는 동물 병원으로 데려옵니다. 박 모 씨는 즉시 긴급 수술에 들어갔고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술 후 돼지의 행동은 눈에 띄게 이상했습니다. 피고가 돼지를 반려동물로 키울 생각을 알고 있던 박 모 씨는 피고에게 돼지의 종합 검진을 권합니다. 그리하여 해당 분야의 권위자이자 그의 대학 선배인 원고에게 연락이 가게 된 것이죠.”

     변호인은 숨을 가볍게 고른 후 재판장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을 이어간다.

     “통상 3일 예정이었던 검사는 원고의 재량으로 2주까지 연장됩니다. 왜냐하면, 검사 결과가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이나 의식을 충분히 가꾸고 표현하지 못해 답답했을 겁니다.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흔히 겪는 어려움처럼 말이죠. 하지만 원고의 진정성 어린 설득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돼지를 자신의 집에 데려다 방치하기에 이릅니다. 돼지는 평범한 돼지가 아닙니다. 이에 돼지가 더 나은 삶은 영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피고의 돼지 소유권을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피고 측 변호인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가뿐히 뗀 뒤 변론을 시작한다.

     “재판장님. 현행법상 반려동물은 주인의 재산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피고는 작년 5월경 핑돼의 교통사고 수술 직전 돼지 농장 주인으로부터 핑돼의 소유권을 구매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경위는 서면으로 제출한 피고와 농장 주인과의 소유권 분쟁 소송 문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싸각싸각 종이 다발을 넘기는 소리가 법정 앞쪽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반려동물의 기본권을 인정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유례없는 일입니다. 핑돼의 소유권은 피고에게 귀속되어 있는바, 원고 측에서 주장하는 동물의 기본권은 비상식적이며 원고의 욕망이 부른 억지일 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원고 측 변호인이 발끈하며 피고 측 변호인이 채 앉기도 전에 발언을 서두른다.

     “억지라고만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 사례가 없었을 뿐이죠. 증거 자료로 제출한 첫 번째 영상을 봐주십시오. 지금부터 원고의 연구를 토대로 돼지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인간처럼 인지 혁명을 거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의식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돼지가 자랐던 농장의 CCTV 영상입니다.”

     돼지 여러 마리가 농장 톱밥 위에서 구르고 있는 장면이 비춰진다. 오른쪽 벽 위에 조그맣게 뚫린 창문으로 햇빛 한 줄기가 농장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분주하면서 농장 톱밥에 뿌려진 햇빛도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한다. 돼지 한 마리가 주변의 다른 돼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려앉은 햇빛을 사수하기 위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긴다. 금빛의 손길과 맞닿으면 기분 좋게 꼼지락거리며 몸을 배배 꼬는데 더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것 같다. 주인의 발소리가 들리는지 귀가 쫑긋해진다. 돼지는 열린 문으로 들어올 빛줄기가 닿을 곳에 미리 가서 문 쪽을 바라본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면 돼지는 네모난 창으로 밀려오는 새로운 세상에 눈에 부신 듯 그러나 눈을 떼지 못하고 찡긋, 옆구리로 드넓은 들판이 상쾌한 바람이 지나가면서 빗질하듯 나부끼고, 자연의 향기로운 풀 내음으로 콧구멍은 들쑥날쑥 춤을 춘다.

     “돼지 농장의 CCTV를 여러 번 확인한 결과 돼지에게서 여타 돼지들과 다른 행동을 수시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돼지가 농장에서 도망칠 때 찍힌 영상을 보겠습니다.”

     돼지는 제대로 잠기지 않은 우리 문을 유심히 보고 있다. 그리고는 어깨너머 뒤로 주인을 한번 곁눈질하고는 살며시 우리 문을 열고 닫는다. 그리고 설레지만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농장 문 쪽으로 걸어간다.

     농장 주변 영상으로 화면이 전환된다.

     돼지가 문에서 나온 방향 그대로, 산길로 이어진 방향으로 발을 디디는데 화면 위쪽에서 개가 개집에서 정신없이 뛰쳐나와 사납게 짖어댄다. 돼지는 머뭇거린다. 머뭇거리다가 잠시 위쪽으로 방향을 틀어 개에게 다가간다. 개 목줄은 팽팽해졌다, 느슨해지기를 반복한다. 목줄만 없다면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다. 돼지는 개 목에 목줄이 걸려 있어 안심했던 건지 개의 코앞까지 다가가 약 올리듯 앞발 하나를 들어 보인다. 마지막 인사였던 걸까. 개는 제풀에 지친 건지 당황한 건지 축 늘어져 눕고는 딴청을 피우며 어색하게 눈꺼풀을 깜박거린다.

     “이때 돼지는 생후 6개월 남짓이었습니다. 실제로 며칠 뒤엔 도축될 운명이었다고 하죠. 돼지는 그걸 알았던 걸까요. 돼지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 농장에서 무사히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피고의 자유에 의해 그의 집에 갇히게 됩니다. 제 자신을 위해선 하루빨리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도 말입니다. 피고의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원고는 이를 언론에 알리기로 합니다.”

     원고 측 변호인이 증거로 제출한 PPT 자료를 요청한다. 재판장에 설치된 화면에 여러 사람의 사진과 프로필이 띄어진다.

     “그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특히 당대 유명한 석학들, 저명한 박사들이 자신의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죠. 그러자 피고는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쏠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제서야 돼지를 전문가에 맡기기로 합니다. 여러 사실을 미루어 볼 때, 피고는 자아를 가진 동물의 행복에 대해 무지하다고 판단됩니다. 이런 피고에게 과연 돼지의 법적 대리인 자격을 가지고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듭니다.”

     “핑돼는 조금 특이한 돼지일 뿐입니다. 피고의 아이인 남진우 군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면서 동시에 피고의 가족입니다. 피고는 핑돼가 일반적인 돼지와 다르며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원고의 시설에 맡기긴 했습니다만, 지금에 이르러선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고 측 변호인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연설하듯 말한다.

     “돼지는 조금 특이한 돼지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작년에 발생한 교통사고 당사자인 트럭 운전기사의 블랙박스 영상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돼지는 농장을 도망쳐 나와 약 5km 떨어진 사고 지점에 도착합니다. 농장을 나오고 약 19시간 지난 후였죠.”

     화물트럭이 차도를 빠르게 달리고 있다. 트럭 전면 유리판에서는 아이의 형체가 잡히고 그 모습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트럭은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순간 돼지 한 마리가 오른쪽에서 튀어나온다. 아이가 트럭에 치이기 직전이었다. 돼지는 아이를 사납게 밀친 뒤 트럭에 치여 그 둔중한 몸이 작아 보일 때까지 나가떨어진다. 트럭 운전사의 신음과 함께 트럭이 멈춘다. 트럭 기사가 트럭 밖으로 나간다. 성인 여자가 아이 이름을 부르는 듯 입매를 뱅뱅 돌리며 트럭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서로 실랑이를 벌인다. 그동안 돼지는 하염없이 그 자리에 누워있다. 누워서 파닥파닥, 허파에 마지막 바람까지 끌어모아 불어넣고 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돼지가 아이를 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돼지는 어떻게 아이를 구할 생각을 했을까요? 돼지 관련 특종이 언론에서 다뤄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의 연구실로 한 통의 전화가 옵니다. 도로 공사 쪽 직원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돼지가 트럭에 치인 전날 밤 어떤 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신고자의 자동차에 달린 블랙박스 영상입니다.”

     어두컴컴한 저녁, 달빛 한 줌 없는 산행길을 차 전조등이 밝히고 있다. 굽이굽이 진 길을 따라 자동차는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데 갑자기 고라니 한 마리가 빛 속으로 황홀하게 뛰어든다. 자동차는 급정거했지만 이미 고라니를 정면으로 들이박은 뒤였다. 고라니는 차도 위에 쓰러져서 고개는 갸우뚱 차를 향해 있다. 너무 밝아 눈이 부신 건지 생명의 불빛이 점점 꺼져가는 건지 고라니의 눈꺼풀이 점점 버거워 보인다. 그때 둔중한 몸을 이끌고 어떤 동물 하나가 빛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돼지였다. 돼지는 고라니의 피 나는 상처를 핥고는 그 옆에 덩그러니 누워버린다. 

    “고라니가 차에 치인 건 오후 10시쯤,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지점과 돼지 농장의 대략 중간 지점입니다. 도로 공사 직원은 이른 아침 교대 시간에 신고 장소로 향했고 고라니 사체를 소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변에서 돼지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영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원고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원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법정 한가운데 있는 책상 앞으로 걸어간다.

     “증인은 돼지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은 생존 이외의 다른 목적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중요성을 가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가령 인간과 가까운 개나 고양이만 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대부분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계되어있어요. 그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인간과 애정을 쌓는 것은 굉장히 흔치 않은 일입니다. 고라니는 돼지와 함께 산속을 돌아다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라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돼지에겐 큰 충격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돼지에게 모종의 슬픔과 더불어 또다시 눈앞에서 위험에 처한 다른 생명을 구하는데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돼지가 고라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그럼에도 생판 모르는 피고의 아이를 보고 차에 뛰어든 행위는 여타 동물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죽음을 목전에서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하는데 큰 망설임 없이 차에 뛰어들 수 있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저희 연구진은 돼지가 인간처럼 추상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구현해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자아를 바탕으로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고 또 그것이 자아를 강화하는, 일종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네요.”

     원고 측 변호인이 갈고 닦은 눈빛을 번뜩이며 재판장을 쳐다본다.

     “네. 이렇게 돼지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지능과 의식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희는 돼지가 앞으로 있을 전문적인 훈련을 무사히 끝내고 그 이후에 자신의 거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고 측 변호인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곧바로 피고 측 변호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핑돼의 지능과 의식 수준이 인간 아이의 7~8세 정도에 해당한다는 논문을 읽었습니다. 이는 성인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핑돼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다 한들 인간사회에서 혼자 살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돼지의 지능이 성인 수준에 못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계속해 나가면 그에 준하는 지능을 갖출 가능성이 있습니다. 애초에 돼지의 지능을 인간의 척도로 잰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지요.”

     몇 차례 질문이 오고 간 후 증인 신문이 모두 끝이 났다. 다시 엄숙해진 분위기. 재판장이 다시 한번 입을 연다. 이번엔 길게. 

     “아직 돼지의 기본권 보장을 고려할 만한 절대적인 증거가 부족합니다. 원고 측은 돼지가 인간 수준의 지능과 의식 수준을 갖추고 있는지 그 설명을 보강토록 하세요.”

     “예. 물론입니다. 이번에는 돼지가 원고의 시설로 옮겨진 후 전문가들과 교육을 받는 영상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돼지 앞에 1부터 10까지 숫자가 써진 종이가 있고 그 앞에 각각 숫자에 맞는 사과가 놓여 있다. 다음 영상에선 사과 없이 숫자 기호만 보고 산수를 푸는 돼지의 모습이 나온다.

     “돼지가 산수 훈련을 받는 영상입니다. 다른 동물도 어느 정도의 산수에는 활약을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이 정도의 산수를 먹이라는 유인책 없이 사람과의 애정으로도 가능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음 영상도 이어서 보시죠.”

     돼지가 주어진 글자를 조합해 사람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다. 

     “돼지의 지능은 점점 인간의 그것을 향해 진화할 것입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전대미문의 일이며 이대로 계속 훈련만 받는다면 약 11세에서 13세 혹은 그 이상의 지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관석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표정은 심각해 보이나 두 눈은 똘망똘망하다.

     “하지만 피고를 보십시오. 피고는 돼지의 이러한 행복을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피고가 한 잡지사와 했던 인터뷰를 봤습니다. 같이 찍은 사진에서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돼지가 평범했다면 말이죠. 피고에게는 자아를 가진 반려동물을 소유할 권리도 그 자세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피고와 약속된 본래 6개월 동안의 훈련 기간을 최대 12개월까지 늘리고 그 후에 돼지가 자신의 거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고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피고 측 변호인의 차례가 온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핑돼는 피고의 가족입니다. 피고가 핑돼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도록 연구 시설에 보낸 것은 핑돼의 행복이라는 공통적인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고는 일방적으로 피고의 가족 면회를 거절해 왔습니다. 몇몇 박사들과 시민단체가 함께 시설을 방문하여 핑돼의 생활을 참관할 수 있던 것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그 자리를 함께한 시민단체의 말에 따르면 핑돼가 많이 힘들어하며 종종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인류 과학에 이바지하려고 태어난 생명이 아닙니다. 증거 자료로 제출한 핑돼가 가족을 떠나 시설로 갈 때 배웅했던 영상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돼지 한 마리가 전원주택 앞마당에서 흥분한 상태로 날뛰고 있다. 돼지는 불안한 눈초리로 낯선 이가 들고 있는 주삿바늘에 눈을 흘기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다. 다른 돼지의 망령이라도 보이는 걸까. 아이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현관 근처로 피신한 상태. 그러나 돼지가 걱정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울상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한다. 결국 돼지는 제압당한다. 주사를 든 손이 돼지의 몸 귀퉁이로 뻗친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돼지는 힘없이 실없이 그렇게 땅으로 엎어진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괴성의 발원지를 바라보는 두 눈이 오랫동안 부릅뜬 채로 파들파들 떨린다. 잠시 후 건장한 성인 몇 명이 다가와 돼지를 싣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재판장님. 피고와 그 가족은 이후 핑돼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고 측은 핑돼의 기본권을 운운하며 시간 끌기 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구상의 한 생명체로서 가족과 함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는 부디 핑돼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원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는 입술의 파들파들 떨림이 온몸으로 전이되기 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건 동물보호단체가 실정을 모르고 한 과격한 표현일 뿐입니다. 저희는 돼지의 뇌 분석을 통해 그의 감정과 생활 하나하나를 컨트롤 하고 있으며 그 어떤 이상징후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훈련 또한 순조롭게 진행 중이고요.”

     흥분하여 소리 지르는 원고를 변호인이 제지하고 타이른다. 그사이를 틈타 피고 측 변호인이 재빠르게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는다.

      “재판장님. 저희 측 참고인이 오늘 법원으로 이송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재판장이 손을 들어 동의의 표시를 전한다.

     법정 옆에 양쪽으로 여닫는 문이 활짝 열린다. 킁킁 소리를 내며 그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구슬땀을 흘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건장한 성인 네 명이다. 그들은 두 손에 쇠사슬을 꽉 쥐고 있다. 느슨할 일 없어 보이는 푸르스름한 줄을 따라 눈을 쫓다 보면 돼지 한 마리가 힘겹게 끌려오는 모양새를 볼 수 있다. 그러다 마지 못해 앞으로 걷는 발굽 소리는 생각보다 경쾌한 울림이다. 부르릉 몸을 떠는 몸놀림에 반해 부둥한 두 눈은 졸린 듯 힘이 풀려있다. 

     참관석에 술렁술렁 활기가 띠기 시작한다. 그들은 외계 문물이라도 기대하는지 불안해하면서 설레는 표정으로 돼지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갑자기 카메라 셔터가 터진 순간을 제외하곤 돼지가 그들의 시야에서 떠나는 일은 없었다. 법원 관계자가 달려와 카메라 주인과 실랑이를 벌인다.

     그때였다. 참관석에서 돼지 이름을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법정을 가득 채운다. 돼지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본 모양인지 괴상한 울음소리로 화답하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쇠사슬을 쥔 손에 힘줄이 굵게 돋는다. 하지만 방금 영상에서 본 장면이 고대로 눈앞에서 재현될 것만 같다.

    원고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법정 한가운데로 나와 수습을 위한 말을 늘어놓는다. 나와서 돼지의 몸놀림과 흡사 비슷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절주절 떠들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여차여차해 돼지가 법정 가운데에 준비된 원판 위로 올라선다. 성인 네 명이 십자 모양으로 손에 쥔 쇠사슬은 끊임없이 팽팽해졌다, 느슨해지기를 반복한다. 돼지는 금방이라도 참관석 안으로 뛰어들 기세다. 원판 위로 킁킁거리는 콧구멍에서 성난 콧김이 원 없이 법정 천장 위로 날아오른다.

     “이게 뭐야. 다른 돼지와 다를 게 없잖아.”

     “뭐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이라는 거야.”

     돼지를 동정하는 사람도 더러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기가 아는 흔한 돼지와 뭐가 다르냐며 기대한 만큼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몇몇 비난의 목소리가 돼지를 향해 달려든다. 크게 야유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자자,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 그렇지 않아도 돼지가 다, 다른 동물보다 코가 발달했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흠흠. 이 돼지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냄새로, 사람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저희 연구진은 사람이 감정을 느낄 때 발산하는 호르몬 냄새로 돼지가 사람의 감정을 구별하고 읽어낸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애써 뽐내는 말투로 말하는 원고의 입이 닫힘과 동시에 법정 안은 정적이 흐른다. 아까 얼굴이 벌게졌던 사람들은 이제는 다른 이유로 얼굴이 홍당무다. 다른 사람들도 뜨끔한 표정을 애써 감추지 못한다.

     돼지도 코를 킁킁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러나 왠지 얼굴 주변이 빠알갛게 뜬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1심 재판이 마무리되었다. 법정을 빠져나가는 사람 중 몇몇은 만족한 표정을, 다른 몇몇은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한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일기 예보에도 없던 비가 쏜살같이 내려와 바닥을 강타한다.

     그날 밤 뉴스 속보가 나왔다. 돼지를 이송하던 컨테이너 트럭이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컨테이너에서 쿵쿵 소리를 들은 운전사가 고속도로 졸음 쉼터에 트럭을 잠시 세운 후 뒤쪽의 컨테이너 문을 살짝 열어봤다. 돼지가 갑작스레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한다. 놀라 자빠진 운전사를 뒤로하고 돼지는 고속도로 쪽으로 곧장 달려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멈췄다고 한다. 화물트럭이 같은 차선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돼지는 머뭇거린다. 그리고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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