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모국어가 그리울 것 같아 보이는 활자마다 입 안에 털어 넣었다”라는 문장을 만들어 두었다. 팝콘 통에 가득 담긴 활자들을 한 움큼 집어 입 안에 넣고 와자작 깨문다. 활자들은 입 안에서 서로 부딪히고 부서지다 녹아버린다. 각진 ㄱ과 ㄴ이 입 안을 간질인다. ㅇ의 빈 구멍에 혀 끝을 넣어본다. 젤리의 식감일 것 같은 ㄹ과 잎채소처럼 사각일 것 같은 ㅅ이 섞이며 이질감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길쭉하기만 한 모음들은 바늘처럼 혀를 찌를 것이다. 따끔.
외국으로의 이주를 앞두고 있는 나는 음성이든 활자든 모든 형태의 모국어를 그리워하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가지고 있다. 외국어 어휘와 구문의 부족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며 지내야 했던 여행의 경험들을 떠올릴수록 이 예감은 더 생생해진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시도해 보는 회화가 대화가 되려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책 한 권쯤 챙기게 되는 여행에서 독해는 웬만해서는 독서로 전환되지 않는다. 말과 의미들은 가용 주파수부터 다른듯한 외국어 사용자들과 알파벳 사이에서 겉돌거나 헤매거나 미끄러진다. 내가 철저히 이방인임을 확인하는 날들, 매일 낯선 것들과 부딪히며 나는 파열음. 그것을 견디거나 즐기는 동안 한껏 벼려진 감각이 여행을 일상과 구분 짓는다. 귀국의 쾌감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반쯤은 자동화되어 꿈을 꾸면서도 내뱉을 수 있는, 오래 덮은 침구 같은 말들 속에 다시 폭 안기는 것.
2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취업 비자, 비행기 편도 티켓, 호텔 예약이 아닌 하우스 계약, 관광지가 아닌 주거지 탐색. 지금 준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것은 여행이 아니라 이주라고 광광 외친다. 이주는 남편 직장의 제안으로 기획되었고 나는 내 직장을 그만둠으로써 적극 동의했다. 한참을 고민만 하고 있던 퇴직에 그럴듯한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진짜 사유를 적기에는 지나치게 좁았던 퇴직 사유 기입란에 ‘해외 이주’라는 네 글자를 적어 넣으며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라면 모두 망해버릴걸!’과 같은 말을 적어 넣고 싶었지만 발톱을 드러낼 용기가 끝내 없었다. 아무리 무디고 짧은 발톱이라도 감추는 것이 떠나는 자의 예의인 것 같았다. 혼자 도망가는 주제에 무슨 면목으로 일갈질인가, 하는 마음이 있기도 했다. ‘해외 이주’는 말하는 내 입장에서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가장 깔끔한 사유였다. 퇴직이나 이직을 한다고 하면 뜯어말리는 사람이 꼭 있다던데. 내게는 아무 만류도 없었다. 퇴직 사유가 정말 매끈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3
몇 주 전 사랑니를 빼고 내가 의도한 발음이 잘 나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발음이 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공기반 소리반의 소울풀한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전보다 더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
사랑니를 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성수동에서 C를 만났다. 이가 빠진 곳으로 ‘스스‘ 소리가 섞여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C에게 이제 진짜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C는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고 나는 ”글쎄, 그래도 우리 아직 살 날이 많아 남아 있으니깐“이라고 답했다. C는 곧바로 자신의 질문을 수정했다. ”너가 떠나기 전까지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C는 내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다. 언제부턴가 베프나 절친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흔히 그 둘 사이에 요구되는 정성과 부지런함과 같은 덕목을 내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친밀함을 재차 확인하고 과시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베프 혹은 절친에게 상처를 주며 관계를 마무리한 역사가 곧 내 교우 관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성공보다는 실패의 서사다. 그 짧지 않은 지지부진한 서사에서 C는 오롯이 제 힘으로 살아남았다.
C와 나는 20대 초반 늘 붙어 다니며 진로, 미래,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외진 곳에 있던 학교에서 자주 오지 않던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천천히 오래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거의 나누지 않았던 주제는 뒷담화와 연애 스토리다. 누군가를 험담할 때와 연애에 관해 자세히 풀어낼 때 나는 공통적으로 내 감정의 더러운 뒷골목을 들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같은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C도 그 두 가지를 거의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이 날 C에게 L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말 그저 우연이었다. 내가 ‘모국어’를 주제로 글을 쓰며 이 접점 없는 두 인물을 엮을 의도가 그때는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C에게 소개한 L은 대충 이런 사람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