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꽃다운 일상
나는 꽃을 아주 좋아한다. 이는 취미생활로 꽃꽂이를 배우고, 꽃시장에 가서 종종 꽃을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특히 고유의 색과 향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생화를 좋아한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꿔주니 말이다.
유난히 화창했던 몰타의 어느 봄날, 산책을 나갔던 나는 이름 모를 꽃송이들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알록달록한 꽃잎을 가진 꽃의 줄기를 사선으로 자른 뒤, 화병에 가지런히 꽂아 집안 곳곳에 두었다. 덕분에 썰렁하던 집 분위기가 좀 더 생기 있고 활기차게 느껴짐과 동시에 몰타에 있는 동안 꽃을 자주 곁에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레타로 이사를 오고 나서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고개를 돌리다 관광안내센터인가 싶은 작은 이동식 건물에 순간적으로 시선이 꽂혔다.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안을 들여다봤는데 연로하신 할아버지께서 꽃을 팔고 계셨다. ‘발레타는 꽃집도 낭만적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무조건 꽃은 여기서 사야겠다는 나만의 다짐을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오전 11시쯤 되었을까? 꽃집에 도착한 나는 벌써 퇴근 준비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마주했다. 꽃을 사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할아버지께서는 아침 일찍 나와서 장사를 하시고 점심시간 전에 정리하신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부터 나의 산책은 주로 이른 아침에 이뤄졌다.
할아버지의 꽃은 날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카네이션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했다. 한날은 꽃이 너무 예쁘다며 한국에서는 카네이션을 스승의 날에 선생님에게 드리는 문화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며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내가 묻는 말에 다른 대답을 하셨더랬다. 그때는 그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날도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하긴 외국인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할아버지는 80세를 훌쩍 넘어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계산할 때마다 큰 소리로 가격을 물어보았다. 나의 노력 덕분인지 숫자에 밝은 할아버지 덕분인지 단 한 번도 계산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적은 없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꽃을 샀고, 꽃을 사지 않더라도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눈인사를 하였다. 그 때문인지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볼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시거나 손키스를 날리며 반가워하셨다. 한 번은 꽃을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돈을 안 받겠다며 그냥 가지고 가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또 그럴 순 없다며 할아버지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에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주신 꽃송이들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쌍화탕과 열쇠고리를 보답 선물로 드리기 위해 다시 꽃집으로 갔다. 할아버지께 쪽지에 먹는 방법을 적어놓았다며 큰 소리로 마음을 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고함을 지른 게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나의 작은 선물을 손에 고이 쥐고 함박웃음을 지으셨던 걸 보면 내 마음만큼은 잘 전달된 것 같다.
예전에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인이 몰타에서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이웃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요즘은 예전만큼 치안이 좋지 않아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하지만, 예전에 비정상회담에서 2위인 한국을 제치고 치안 지수 1위에 오른 몰타의 치안은 정말 좋은 편이다. 1년 동안 지내면서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느꼈다.)
중개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어릴 적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미소와 선물이 이해가 되었다. 아마 꽃집 할아버지께서는 예전의 몰타 모습에 훨씬 익숙하시니 외국인이지만, 동네 주민이자 단골손님인 나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신 게 아닌가 싶다. 오늘도 할아버지의 꽃집은 아침 일찍 문을 열었을까? 여전히 귀는 어두워도 숫자에 밝은 모습을 유지하시며 누군가에게 화사한 하루를 선물해주시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