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나의 학원 생활
어학원 교육과정에 따라 나는 3개월에 한 번씩 시험을 쳤고, 시험 결과에 따라 새로운 반에서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났다. 시험은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평가하는 필기시험과 말하기 능력을 평가하는 실기 시험으로 이루어졌다. 실기 시험은 개인별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자료를 만들어 발표를 해야 하는데 덕분에 김정은, 반달리즘, 인간복제, 성평등과 같은 폭넓은 주제에 대해 탐구할 수 있었다.
나의 두 번째 몰타 영어 선생님은 남아공 출신의 금발 백인 여성이었다. 작은 화면 속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애정을 가득 담아 나를 환영해주었고, 영문으로 된 집 계약서를 들고 고민하던 내게 필요한 친절을 베풀기도 하였다. 따뜻한 배려가 너무 고마웠던 나는 처음으로 대면 수업을 하는 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 포옹을 했다. 그렇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왔는데 나는 선생님의 이름을 막 불렀다. 하지만, 내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년 전 사촌 동생과 처음 몰타에 와서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teacher’라는 단순한 사고를 거친 나의 뇌는 하루에 몇 번이고 ‘teacher’를 입 밖에 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teacher’라고 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친구도 아니고 선생님의 이름을 어떻게 그렇게 막 부를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한 나는 차마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할 말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려 노력했다. 그때는 3주 동안이었으니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이제 1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할 말을 전하기 위해 주변을 얼쩡거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그 덕분일까. 그 이후로 그녀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아주 열정적인 선생님이자 사랑스러운 친구이기도 했다. ‘카톡’ 거리는 알람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bts와 영화 기생충의 나라인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프랑스인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만큼이나 친근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다 함께 걸어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아쉬운 대로 큰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그녀의 남자 친구가 나를 보며 “장마철~”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고급 어휘(?)를 외국인 발음으로 들은 나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한날은 친구들과 함께 그녀의 집에서 각자 맛있는 와인을 가지고 와서 시음회를 열기로 했다. 선생님의 집에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이는 것은 인생에서 다시없을 경험이었다. 그녀의 집에는 귀여운 리트리버와 흑백의 조화가 매력적인 고양이가 있었다. 똑똑한 강아지는 우리를 보자마자 자신의 목줄을 가지고 왔다. 아마 누군가가 올 때마다 함께 산책을 가던 습관이 있었나 보다. 그녀는 와인은 무조건 레드와인이라고 했다. 술 알못인 나는 이 와인이 저 와인 같고 저 와인이 그 와인 같았지만, 혀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그 미묘한 차이를 느껴보려 애썼다. 영어 선생님이자 인생 친구 같던 그녀는 내게 “너도 나처럼 도전적이고 자유를 즐기는 여성 같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테라스에서 오렌지 나무 위에 비치는 별빛을 보며 들어서 그런지 나도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반짝이는 미래를 꿈꿨다.
그녀는 히피 느낌이 물씬 나는 자유 영혼이었다. 남자 친구와 함께 그의 어머니가 사는 포르투갈에 놀러 갔는데 그곳이 너무 좋아져서 앞으로 거기서 살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덧붙여 그녀는 몰타인인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딸은 나를 따라 포르투갈에 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 자립에 필요한 집안일과 기타 등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 엄마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한 여자로서의 삶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본능 그리고 좋아하는 곳을 따라 움직이는 그녀가 너무 멋졌다.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녀와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는 않지만, 내게 “너는 나의 친구야, 우린 친구라고,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라던 포근했던 그녀의 말은 늘 마음 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영어 선생님이기도, 인생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선생님보다는 나이와 국적을 넘어선 친구인 그녀를 추억하며 나 또한 강한 자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